[헤럴드경제=박정규(성남)기자]이재명 성남시장에 대한 ‘허위 사실’을 방송에서 발언한 차명진 전 국회의원이 지난 6일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사과하면서 이 시장의 ‘슬픈 가족사’에 관심이 쏠렸다. 차 전의원이 이 시장의 ‘슬픈 가족사 이야기’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차 전 의원은 이날 “이 시장이 직접 쓴 ‘슬픈 가족사 이야기’를 통해 그분의 형이 진짜로 정신병력이 있고 그로인해 가족들이 많은 고통을 당한 사실을 알게됐다”고 밝혔다. 차 전의원은 공개 사과했다. 이 시장은 받아들였다. 하지만 법원에서 배상하라고 한 700만원은 받았다. ‘행위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회적정의’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상복지시리즈'로 전국에 ‘이재명 신드롬’을 일으킨 그는 결코 쉽지않은 가족사를 8일 털어놨다. ‘슬픈 드라마’보다 ‘더 슬픈 가족사’ 였다. 비록 남들이 모르는 ‘응어리’를 안고 살아왔던 그는 “가슴 아픈 개인사를 왜곡해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 상처 주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누구나 가슴 한켠에 쌓아둔 ‘비밀’이나 '사연' 하나쯤은 갖고 있지만 그는 ‘가족사’를 털어놓으면서, 그만의 방식으로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시장은 “팔순 노모를 둔 자식으로, 아이를 둔 부모로서, 결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
이 시장은 7남매 중 넷째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7남매는 어머니 손에 자랐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다. 학교는 생각도 못했다. 이 시장은 중 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패스’했다. 낮에는 학업 대신 공장에 나가 가족 생계를 위해 생활비를 벌어야했다. 7남매 모두가 ‘전투형’ 생계를 치뤘다. 넷째 이재명은 단칸방 구석에서 밤새 공부를 했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이었다. 그는 생활비를 포함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진학했다. 이 시장은 “그때 받은 돈으로 셋째형이 공부해 회계사가 됐고 나는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셋째와 넷째의 성공은 어머니에게 큰 자랑이었다”고 했다.
그는 판검사의 ‘화려한’ 길을 포기하고 약자를 위해 길거리 ‘인권변호사’의 길을 외롭게 걸었고 시장에 당선됐다. 어머니는 ‘자수성가’한 아들이 너무 대견하고 감사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가 최근 악의적인 언론보도와 방송을 뒤늦게 아시고 펑펑 울고 계셨다”고 했다.
앞서 차 전 의원은 지난해 10월 발생한 ‘판교 환풍구 사고와 관련해 종편에 출연해 “이재명 시장은 자기를 도왔던 형을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는 허위발언을 했다. 이시장은 즉각 고소했다. 법원은 최근 700만원을 이시장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시장의 가족사와 관련된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공판에서도 재판부는 피고인 인터넷 언론과 해당기자는 이재명 시장에게 1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시장은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개운하지는 않다. ‘시장’이라는 공인으로 고소하는 일도, 재판에서 승소해 위자료나 합의금을 받는 것도 사실 원하지않는다.
하지만 “허위 사실을 또다시 유포할 경우 반드시 책임을 물겠다”는 단호한 입장은 ‘불변’이다. 그는 불의에 절대 굽히는 법이 없는 ‘칼라’가 분명한 사람이다.
이시장은 지난해 8월 ‘하늘나라’로 떠난 여동생(여섯째)이 그립다. 어머니에게도 죄송하다. 가난때문에 학교도 못가고 고생만 했던 동생이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짖궂은 하늘’을 보면서 원망도 많이 했다.
당시 이 시장은 ‘여동생을 영원히 떠나보내며’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억울한 일 당하는 사람이 없게하고 모든 사람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정한 기회를 누리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힘쓰겠다”고 먼저 떠난 여동생에게 다짐했다.
쉽지않은 가족사를 털어놓은 이 시장은 “숨기려 해도 숨길수 없고 가족 문제라 반박조차 쉽지 않지만 인터넷상에 온갖 악성루머가 떠돌아 가족사를 공개하게됐다”고 했다.
어버이날을 맞은 8일 이재명 시장은 오랫만에 들떠있다.
아침 출근길에 ‘콧노래’도 절로 나온다. 그는 퇴근후 팔순 노모에게 달려갈 생각에 신난다. 오늘은 ‘최고 ’맛있는 음식점에서 ‘최고 맛난’ 음식을 어머니에게 대접할 생각이다. 오늘만큼은 ‘응석’도 한번 실컷 부리고 싶다. 오랫만에 어머니 품에 안겨 실컷 울어도 보고, 50년동안 쌓여왔던 ‘응어리’도 말끔히 풀어내 보고 싶다. ‘찬란한 슬픔’을 딛고 살아왔던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한(恨)’으로 얼룩진 그의 인생은 오늘 큰 전환점을 맞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지난 세월에 겪었던 7남매의 슬픈 가족사를 어버이날에, 어머니의 품에서 오늘 ’훌훌’ 털어 버릴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