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안 없고 기업미래 불투명” 우리銀, 성동조선 4,200억 거부 대한전선은 지원대신 매각결정 경남기업사태 이후 외압 감소 “은행들 생존위해 당연한 조치”
부실기업에 대한 은행권의 자금지원이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이유가 어찌됐든 살리고 보자던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 부실기업들의 자금지원 요청에 줄줄이 ‘노’(NO)를 외치고 있는 것. 저금리 등으로 인해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묻지마식 지원’은 공멸을 부를 게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경남기업 사태 이후 관(官)에 의한 외압이 줄어든 것도 한 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함께 국내 기업금융의 쌍두마차로 통하는 우리은행이 최근 들어 ‘부실기업 자금지원’에서 가장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상업ㆍ한일은행 시절부터 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근로자, 지역경제를 고려해 자금지원여부를 결정했던 우리은행은 최근 들어 ‘기업의 회생가치’와 ‘은행 건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28일 성동조선해양에 대한 4200억원의 추가 자금 지원을 거부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뚜렷한 회생안이 없고 얼마나 더 많은 지원금이 들어갈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민영화를 앞두고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 지원에 나서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면서 전했다.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신한은행, 외환은행,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등 5개 은행도 최근 SPP조선에 대해 추가자금 지원을 거부했다. 이들 은행은 SPP조선이 2년 연속 적자를 내고 최근 추가자금 지원을 요청하자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고 채권단에서 발을 뺐다.
매번 추가 자금을 지원해주던 대한전선 채권단도 결국 대한전선을 매각키로 결정했다. 하나은행을 주채권은행으로 하는 채권단이 대한전선에 쏟아부은 돈만 1조원이 훌쩍 넘는다.
부실기업 정리의 좌장격인 산업은행도 예전과 달리 냉정해졌다. 이전엔 자금을 지원해 기업을 살리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회생가능성과 산업 전반을 보고 ‘살릴지 말지’를 결정한다. 현대그룹, 한진그룹, 동부그룹, 한진중공업, 동국제강, STX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등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최근 달라진 은행권 분위기는 포스코 사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계열사 부실등으로 주식가치가 급감하자 적극적으로 지분 매도에 나서고 있는 것. 예전과 달리 전략적 감액손실로 이어지는 불필요한 지분을 줄이고 대출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금융권이 이처럼 부실기업 자금지원에 깐깐해진 이유는 회생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자금을 지원했다간 은행 자체도 위험해질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 일례로 지난해 은행들은 STX그룹, 모뉴엘, 동부건설에서 잇달아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면서 4분기에만 1조원 이상의 손실을 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액수가 적은 것도 아니고 한 기업에 수백, 수천억원씩 지원해야 하는데 부실이 터지면 은행도 흔들거릴수밖에 없다”면서 “최근 은행들이 대기업이 아닌 중소, 소호대출에 집중하는 것도 이런 ‘한방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바젤 III 도입 등으로 건전성 관리가 중요해진 반면, 부실기업에 대한 전망은 어둡다는 점도 고민이다. 실제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부실기업(부도확률 0.4% 이상) 비중은 2010년 7%에서 2014년 27%로 급증했다. 산업은행도 지난 29일 자체보고서에서 현재 금융시장 자금지원이 기업의 성장성ㆍ수익성에 비해 팽창돼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반부패전쟁을 펼치면서 은행들이 부실기업에 추가자금 지원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꿨다는 분석도 있다. 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예전엔 외부압력이 들어왔지만 경남기업 사태 이후 그런 압력들이 잠잠해졌다”고 했다. 부실기업에 대한 충당금이 늘어나면서 커지고 있는 은행 직원들의 반발 정서도 경영진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황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