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저커버그’ 별칭 텐센트 마화텅 회장 국내굴지 게임업체 이어 금융결제 지분확대 푸메이청 등 미디어 부호들 잇단 한국진출
역발상·자본력·정부지원 ‘한국속 중국’의지 中 전방위 勢확장…국내재계 시장잠식 우려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성연진 기자] “중국 연구소에 삼성만 연구하는 태스크포스(TF)가 따로 있다고 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3년 4월 보아오 포럼을 마치고 귀국한 후 이같이 말했다. 그는 “중국이 한국과 삼성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2년 뒤, 중국 신흥 부호의 한국 공략이 시작됐다.
지난해 9월은 전 세계가 ‘알리바바 마법’에 기염을 토했다. 중국의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첫날, 마윈 회장은 미국 증시 역사상 최대 규모인 218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상장하자마자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중국 최고 부호자리 역시 바뀌었다. 이 즈음 서울 명동에는 일제히 ‘알리페이’의 광고가 도배됐다.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지하상가 통로는 오로지 알리페이 광고로만 벽면이 가득 채워졌다. 지금도 여전하다. 알리페이는 알리바바의 온라인 결제 대행업체로, 한국인을 대상으로는 공식 서비스가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알리페이 광고는 한국어와 중국어로 동시에 이뤄졌다. 이 광고가 한국에 놀러온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선전포고한 셈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23일 미국의 모바일 결제 솔루션업체인 루프페이(LoopPay) 인수를 밝힌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한국 시장을 집어 삼키려는 중국 부호의 최전선에는 중국의 IT 부호들이 있다. 이들이 단순히 저가의 인건비를 내세운 싸구려 하드웨어업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윈은 넓은 중국 대륙에서는 배송이 느려 온라인 쇼핑몰은 불가능할 것이란 고정관념을 깼다. 현재 중국에서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입 후 이틀 내 받을 수 있는 고객 수는 3억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 최고 부호의 성공도 결국 ‘남과 다른 생각’이 발판이 된 셈이다. 실리콘 밸리 부호들의 성공 공식과 다르지 않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중국 IT 기업들이 무서운 진짜 이유’란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의 핵심은 중국 IT업계 부호들이 ‘새로운 사고와 아이디어’ ‘막대한 자본’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플랫폼결제ㆍ게임 갈수록 커지는 텐센트 마화텅의 욕심=콘텐츠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중국 부호들의 욕심은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부호는 ‘제 2의 마크 저커버그’로 불리는 중국 최대 온라인 기업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이다.
텐센트의 온라인 결제 시스템인 텐페이는 최근 한국 시장 진출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페이, 삼성전자의 루프페이, 그리고 카카오페이와 경쟁하게 되는 셈이다. 주목할 것은 텐페이의 경쟁력이다. 중국 시장 내 전자결제 점유율은 알리페이가 절반 가까이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텐페이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알리페이와 텐페이 모두 한국 금융결제시장에서 파괴력 있는 플랫폼 결제 사업이 가능하다고 분석된다. 에스크로뿐 아니라 온라인 결제와 송금 등 한국 시장에 적합한 금융사업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화텅 회장이 진짜 국내에서 영향을 발휘하는 곳은 한국의 게임 분야다. 그는 2012년 한국 카카오톡에 720억원을 투자, 다음카카오의 3대 주주가 됐다. 다음카카오는 국내 최대 모바일게임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텐센트는 모바일 게임업체 네시삼십삼분과 파티게임즈 지분도 20%가량 보유하고 있다. 벤처캐피탈 등을 통해 간접 투자를 한 국내 스타트업 게임업체만도 여러 곳이다.
최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와 김정주 NCX 회장의 대결구도에서도 마 회장의 패를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됐다. 김택진 사장 지난 17일 엔씨소프트 자사주 8.9%를 약 3900억원에 넷마블에 넘겼다. 업계는 김 사장이 우호세력인 넷마블에 지분을 매각해 김정주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마 회장의 텐센트는 넷마블 지분 25% 이상을 가진 3대 주주다. 엔씨소프트에 간접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셈이다. 아예 넥슨의 보유지분을 마 회장이 사들일 가능성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국내 게임업계 상위 업체가 모두 마 회장 입김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는 시작일 뿐이라는 게 재계 관측이다. 지난해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과 함께 한국을 찾은 중국 부호는 무려 250여명에 달했다. 규모에서 엿볼 수 있듯 한국에 대한 관심은 다양하다.
▶영화ㆍ부동산 등 전방위로 확대되는 中 부호들의 투자=최근 중국 미디어 부호 푸 메이청 화책미디어(華策影視)그룹 회장은 영화 ‘변호인’을 배급했던 영화사 NEW에 535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이로써 화책미디어그룹은 NEW의 2대주주가 됐다.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미디어 부호로 꼽히는 그는 인쇄광고업으로 일찍 성공의 길을 걸었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국 검색 포털 바이두와 협업을 맺기도 했다. 포브스가 추정하는 그의 자산은 16억 달러로 중국 부호 순위 71위에 해당한다. 화책미디어는 최근 팬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드라마 ‘킬미, 힐미’를 공동제작하기도 했다.
‘올인’과 ‘주몽’ 등으로 한류 열풍을 일으킨 제작사 초록뱀미디어도 중국의 한국방송 콘텐츠 최대 배급사인 ‘주나 인터내셔널’에 넘어갔다. 계약금은 12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용준 김수현 등 한류 중심에 선 배우들의 소속사 키이스트의 2대 주주 역시 중국 기업 ‘소후닷컴’이다. 이 회사는 중국의 인터넷 혁신가로 불리는 장차오량(张朝阳) 회장이 세운 곳이다. 장 회장은 2008년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중국의 ‘뉴 리치(New Rich)’로 소개했고, 2010년에는 포브스가 뽑은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이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그의 순자산은 7억 달러 수준으로 집계됐다. 중국 인터넷 업계 혁신의 아이콘이던 그는 키이스트의 문화 콘텐츠 수출 관련한 전략적 제휴 협정을 위해 150억원을 기꺼이 지불했다.
한국에 대한 중국 부호들의 관심은 ‘부동산’이라고 피해갈 리 없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기업 ‘뤼디그룹’은 2011년 11월부터 제주도 서귀포시에 1조원을 투자해 헬스케어타운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어 지난해에는 제주시 노형동 드림타워 복합단지 프로젝트를 인수했다. 제주도에 추가 투자계획만도 6억달러 규모다.
뤼디그룹은 1992년 상하이 시정부가 시내 녹화(綠化) 사업 추진을 목표로 자본금 2000만위안(약 35억원)을 들여 세운 국영기업이다. 공무원 출신의 장위량 회장은 제주도의 헬스케어타운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계획이다.
뤼디그룹에서 보듯, 중국 부호들의 한국 진출은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함께 중국 부호들의 한국 진출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거대 자본력을 갖춘 중국 부호들이 막강한 플랫폼을 무기로 진출 범위를 넓힐 경우,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보다 중국 기업들의 한국 진출이 더 수월해질 가능성이 크다. 전자상거래나 콘텐츠 개방과 관련해선 수차례 중국 IT업계 거물들이 방한하면서 사전에 이야기가 오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들의 목적은 뚜렷하다. 올해 마윈 회장은 새해를 앞두고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것처럼 우리도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내수 시장에서 스마트폰 점유율 1위였던 삼성전자를 추월한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도 “현재 샤오미가 시장에 주고 있는 충격이 삼성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과 비슷한 결과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이 일제히 ‘중국의 삼성이 되겠다’고 선언한 밑바탕에는, 중국 내수 시장에서 1위였던 한국 기업을 몰아내고 나아가 중국 밖으로 진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13억 인구의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한 중국 부호들의 자본력에 한국 부호들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실제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이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을 두고 재계에선 부러움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자본이 많다보니 검증되지 않아도 가능성이 무한한 업체에 얼마든지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 한국 부호들이 비즈니스 확장에 한계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나아가 기존 비즈니스를 빼앗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년 전 이재용 부회장은 “중국의 고위 관료들이 삼성이 어디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지도 알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 상황은 역전 됐다. 당시처럼 한국의 부호들이 이제 ‘중국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때가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