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홍승완 기자]드라마 한 편 때문에 호주가 시끄럽다. 한 방송사가 현재 호주 최고의 부호인 지나 라인하트(Gina Rinehart) 핸콕 프로스펙팅(Hancock Prospecting) 회장의 ‘별난’ 가족사를 다룬 드라마를 방송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라인하트 회장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면서 각종 법적 수단을 통해 드라마의 방영을 막고 나서는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드라마는 방송을 탔지만, 이를 두고 호주 내에서도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현직 총수 일가와 선대 회장들을 TV드라마 등에서 자유롭게(?) 묘사하는 것이 여의치 않은 것과 묘하게 대비된다.

논란이 되고 있는 드라마는 호주의 방송국 나인 네트워크(Nine Network)가 방송한 ‘하우스 오브 핸콕(The House of Hancock)’이다. 드라마는 세계 최대의 철광석 광산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 ‘핸콕 프로스펙팅’ 오너가를 다룬다. 핸콕 프로스펙팅은 지나 라인하트의 아버지인 랭 헨콕(Lang Hencock)이 창업한 회사다. 그는 지난 1992년 사망했고, 그 재산을 지나 라인하트가 물려 받았다. 그녀의 현재 재산은 119억 달러로 우리돈 13조원이 넘는다.

지난해 인천항에 크루즈를 타고 입항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호주 광산 인프라 건설과 관련해 사업을 논의하기도 한 호주의 대표 기업가다.

그러나 드라마는 단순히 핸콕 가문의 성공을 보여주지 않는다. 드라마는 랭과 지나와 함께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 로즈 락슨(Rose Lacson)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췄다. 드라마의 초반은 아름답게 흘러간다. 젊은 지나와 그의 아버지가 환상의 호흡을 보이며 회사를 빠르게 키워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곧 이야기는 틀어진다. 짧은 첫 결혼생활을 마친 지나가 1983년 당시 57세의 프랭크 라인하트(Frank Rinehart)와 재혼하면서다. 랭은 딸이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남성과 결혼하는 것에 불같이 화를 내며 반대하지만 지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프랭크와 가정을 꾸린다. 이 때부터 부녀 사이에는 반감이 싹튼다.

이후 랭이 사랑한 아내 호프 여사가 갑자기 사망하게 되고, 랭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지나는 이런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 로즈 락슨(Rose Lacson)을 고용한다. 거기서 새로운 갈등이 태어난다. 랭이 생기넘치는 37세 연하의 로즈에게 푹 빠져 버린 것이다. 둘은 사랑에 빠진 뒤 1년만인 1985년 결혼하게 된다.

아버지와 그의 재산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지나에게 로즈가 좋게 보일리 없다. 이후 두 사람간의 갈등과 다툼이 시작된다. 특히 1992년 랭이 사망한후 두 사람의 전쟁은 본격화 된다. 이 과정에서 약물중독, 사생아 출산, 살인 교사 등의 자극적인 소재와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 드라마는 이러한 부분에 포커스를 맞췄다.

드라마의 제작 소식을 뒤늦게 전해들은 지나는 다양한 법적 수단을 동원해 드라마의 방송을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법정 공방이 대법원까지 이어지면서 사태는 장기화를 맞았다.

그사이 두편으로 이뤄진 드라마의 첫 편은 지난 8일 호주의 방송을 탔다. 단번에 화제가 됐다. 140만명이 실시간으로 시청했다.활동 중인 자국 최고갑부의 이야기를 다룬 데다가, 지나 라인하트를 연기한 맨디 맥엘니(Mandy McElhinney)와 랭을 연기한 샘 닐(Sam Neill), 로즈 역의 페타 서전트(Peta Sergeant) 등 배우들의 연기가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방송이 나간후 지나 측은 “허접하고(tacky), 많은 부분이 왜곡된(distorted) 드라마”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방송국 측은 “우리가 만든 것은 소설에 기반한 드라마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라는 논리로 맞섰다.

하지만 2편의 방송이 예정돼 있던 15일을 앞두고 상황이 다소 변했다. 지난 13일 호주 대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방송국이 드라마의 방영 전에 지나 라인하트에게 2편을 먼저 보여줄 것”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예고편, 출연자들의 인터뷰 등을 통해 미리 밝혀진 드라마 2부의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게 비춰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부에선 지나와 로즈의 20년에 걸친 법정 공방이 주로 다뤄질 예정이었다.

법원의 명령이 나온지 이후 얼마되지 않아. 지나측과 방송국은 “일부조건을 받아들이는 대신 드라마를 방송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합의내용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나측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9곳의 장면을 방송국이 삭제하고, 드라마의 서두에 ‘작품이 소설에 기반한 허구’임을 밝히는 것이 조건이었다는 게 현지 방송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결국 드라마는 15일(현지시각) 골든타임에 예정대로 방송을 탔다. 아직 이에 대한 양측의 특별한 반응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호주 사람들의 반응은 2편의 방송 전부터 엇갈리는 양상이다.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훼손됐다”는 의견과 “드라마라고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마음대로 표현해도 되는 아니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