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슈라이어 · 크리스 뱅글·이언 칼럼…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 그들의 스타일은?
‘피터 슈라이어 현대ㆍ기아자동차 디자인총괄 사장, 크리스 뱅글 전 BMW 디자인총괄 책임자(현 크리스뱅글어소시에이츠 매니징디렉터), 이언 칼럼 재규어 디자인총괄 디렉터.’
자동차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자동차 디자인의 역사를 이끄는 세계 3대 자동차디자이너. 이들의 손끝에서 자동차의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우디, 폴크스바겐, 피아트, BMW, 포드, 재규어 등에 이어 현대ㆍ기아자동차까지, 이들의 손길이 거쳐 간 모델은 어김없이 파격과 화제를 일으켰다. 디자인업계와 자동차업계를 모두 아우르는 거장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 실제로 만나본 이 3대 디자이너는 명성 그 이상이었다. 사석에선 유머와 농담을 스스럼없이 던지면서도 자동차 디자인을 논할 때면 확고한 철학과 신념, 날카로운 지적을 아끼지 않았다. 자동차 디자인을 놓고 펼치는 그들의 진지한 고민과 상상력은 모든 이가 자동차를 한층 더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세계 3대 자동차디자이너, ‘우린 모두 친구(?)’=피터 슈라이어와 크리스 뱅글, 이언 칼럼 등 세계 3대 디자이너를 ‘헤럴드 디자인포럼 2012’ ‘2013 디트로이트 모터쇼’ ‘2013 서울 모터쇼’ 등을 통해 모두 만나볼 기회를 얻었다.
재미있는 건 3명 모두 친분으로 얽힌 사이라는 점. 피터 슈라이어와 크리스 뱅글은 각각 BMW와 아우디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유럽에서 활동했을 당시부터 두터운 친분을 쌓고 있다. 현대ㆍ기아차, 크리스뱅글어소시에이츠 매니징디렉터 등 각자의 길을 떠난 지금까지도 친분이 이어지고 있다.
두 디자이너는 지난해 열린 ‘헤럴드 디자인포럼 2012’에 강연자로 함께 참석한 바 있다. 당시 피터 슈라이어와 크리스 뱅글은 강연 대기실 복도에서 만나자마자 매우 반가워하며 선 채로 장시간 안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피터 슈라이어와 이언 칼럼 역시 영국 왕립예술대학 선후배 사이다. 이언 칼럼은 최근 ‘서울 모터쇼’에서 기자와 만나 “런던에서 (피터 슈라이어와) 대학에 같이 다녔고, 피터 슈라이어가 한 학년 위였는데 서로 잘 알고 지냈다”고 전했다. 세계 3대 자동차디자이너가 경쟁관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적으로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서로를 평가하다. “제 점수는요”=3대 디자이너는 서로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크리스 뱅글은 ‘헤럴드 디자인포럼 2012’ 기간에 기아자동차 ‘K9’을 실제 의전차량으로 애용했다. 그는 K9에 대해 “피터 슈라이어의 느낌이 살아 있는, 멋진 차(nice car)”라고 평가했다. 또 “피터 슈라이어가 아우디에서 오랜 기간 디자인을 담당했기 때문인지 아우디의 느낌이 보이면서도 아우디와 다른, 피터 슈라이어만의 감각이 살아 있는 차”라고 덧붙였다.
현대ㆍ기아차에 대해서도 “현대ㆍ기아차가 이 같은 발전을 이룬 데에는 디자인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피터 슈라이어를 비롯해 현대ㆍ기아차가 유명 자동차디자이너를 많이 영입하고 있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행보”라고 강조했다.
피터 슈라이어 역시 크리스 뱅글이 이끈 BMW 디자인에 대해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담으면서도 역동적인 디자인을 구현한 브랜드”라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브랜드”라고 호평했다.
이언 칼럼 역시 “현대ㆍ기아차가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한 이후 차량 디자인이 크게 성장했다. 특히 ‘스포티지R’ ‘K5’ 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3대 디자이너가 밝힌 ‘나에게 디자인이란?’=‘헤럴드 디자인포럼 2012’ 당시 크리스 뱅글에게 디자인 관련 강의를 부탁했다. 대뜸 그는 흰 종이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쓱싹쓱싹~” 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이내 그림이 완성됐다.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개 그림이었다. 그런데 개의 머리가 3개였다. “머리가 하나만 있어도 낭떠러지를 무서워할 텐데, 머리가 3개나 달렸죠. 그러니 낭떠러지를 도저히 넘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디자인의 핵심을 ‘도전’이라고 말했다. “ ‘머리가 3개 달린 개’처럼 새로운 도전 앞에서 항상 ‘안 돼(NO)’라고 말하는 사람은 디자이너로의 자질이 없다”고 덧붙였다.
뒤이어 신이 난 듯 ‘소처럼 생각하는 말’ ‘발이 거꾸로 달린 오리’ 등 상상하기도 어려운 동물 그림을 연이어 그렸다.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묻어나는 일화다.
피터 슈라이어는 재즈를 디자인에 비교했다. “즉흥 연주를 펼치듯 디자이너도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순간순간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유롭게 영감을 펼치는 것, 그게 성공적인 자동차 디자인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이언 칼럼은 직접 그려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디자이너가 그림을 그리지 않고 철학만 강조하는 건 옳지 않다”며 “스케치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디자인이 탄생할 수 없다”고 전했다. 또 “10년, 20년이 흘러도 여전히 사랑받는 디자인을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들의 주요 작품은=피터 슈라이어는 아우디 ‘TT’를 디자인하며 일약 글로벌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폴크스바겐과 아우디에서 디자인 혁신을 주도하며 세계적인 자동차디자이너 반열에 올랐다. 이후 기아차로 이동,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을 거쳐 지금은 현대ㆍ기아차 총괄 사장을 맡고 있다.
‘BMW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크리스 뱅글은 BMW ‘7’ 시리즈가 그의 대표작이다. 최근에는 자동차업계를 떠나 삼성전자에서 마스터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언 칼럼은 1999년 재규어 수석디자이너에 오른 뒤 재규어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신차 ‘F-TYPE’ 역시 그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