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회고록 정국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연말정산의 야단법석을 경험한 국민들에겐 어쩌면 뜬금없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새해맞이 인사가 유효한 한 해의 시작에 과거의 일을 들춰내는 회고록이 나온 것만으로 충분히 아이러니하지만, 정작 관심을 받는 이유는 그 회고록의 주인공이 전직 대통령이라 그렇다. 여기저기 송구영신을 목청 높여 외친 때가 꽤 지났건만, 회고록을 출간하는 쪽에서는 아직도 송년회를 끝내지 못한 건지, 아니면 새로운 신년회를 시작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청와대와 정치권이 민감해 하는 부분은 주로 남북관계와 국제 및 자원 외교, 4대강 사업 부분인 것 같다. 이를 비판하는 책인 『MB의 비용』도 맞불작전인 양 발간되어 점입가경이다.
정치권이 관심을 갖는 문제는 자칫 정치적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고 정쟁으로 흐를 수 있는데, 이번 경우 특히 그럴 것 같다. 사실상 회고록의 주장이나 그에 대한 비판도 익히 알고 있는 지루한 가락이다. 이와 조금 다르지만 흥미 있는 측면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건 회고록의 경제관이다.
그는 감세정책을 경제학 교과서의 금과옥조로 소개하고 그 근거로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 집권 시기 경제정책을 들고 있다. 미국의 저명 경제학자 스티글리츠가 『불평등의 대가』에서 미국을 실패한 불평등사회로 전락시킨 원인으로 레이건 정부의 감세정책을 든 것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인식이다. 물론 스티글리츠가 미국의 민주당과 가까운 인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 역시 정치적 진영 논리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누구나 동의하는 경제학의 정석이 아닌 반쪽의 논리인 것은 확실하다. 그것도 30년 전 미국 얘기를 마치 작년 정책인 것처럼 세계추세 운운하니 다소 당황스런 면도 있다.
감세정책하면 떠오르는 최근 회고록이 또 하나 있다. MB와 ‘대통령의 시간’을 같이한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이다. 올해 1월 초에 책 『현장에서 본 경제위기 대응실록』이 나왔으니 그는 회고록에서도 MB와 시간을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수출증대를 위한 환율 관리와 이와 연동된 경상수지 흑자 달성을 우리 경제의 방어막이자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믿고 있는 ‘스스로 우파인’ 현장 경제 관료다. 시장 환율의 논리를 내세워 환율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 경제학과 싸우는 것이 글로벌 경제위기보다 힘들었다는 그의 설명에 경제이론보다는 현장이 생생히 느껴진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버블 붕괴를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 현상이며, 경제성장이 우선이라는 그의 시각에는 이른바 ‘도금시대’란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19세기 말 세계적 거부만을 양산한 미국의 경제성장을 ‘도금시대’라고 칭하며 그것이 허구였다고 풍자하고, 이에 빗대 유력한 경제학자 폴 크루거먼이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 이후 미국의 양극화 경제성장의 시기를 ‘신도금시대’로 비판하지 않았던가. MB경제의 핵심이자 우리 사회 내홍의 한 원인이기도 한 감세정책도 마찬가지다. 혹시 여기도 신도금시대의 착시 현상이 자리 잡고 있지 않는지 모두 고민해야 할 것이다.
MB의 경제특보이기도 했던 그는 자신이 참여해서 달성했다는 플러스 경제성장은 자랑하지만, 골이 깊어진 우리 사회 양극화와 소득불균형은 일종의 세계적 트렌드이거나, 그 원인이 개인의 교육과 노동의 숙련도 차이에 있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성장인지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폭 넓은 성찰은 없고 신념만이 보인다.
그럼에도 최근의 이 두 회고록은 적어도 한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비록 그것이 정치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기록물임에는 틀림없지만, 오히려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경제 정책의 실제적 토대와 고민의 수준, 시각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는 자료로 활용하면 더 유익하겠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