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안하는 사회…'욱질범죄' 키운다
충동조절장애 5년새 30%급증 폭력범 10명중 넷은 ‘욱질범죄’…개인주의 보편화·열등감등 주요인
#“내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 한게 뭐가 있지. 또 국가는 날 위해 해준게 뭐가 있나. 근데 날씨는 왜 이렇게 화창한거야. 저기 걸어가는 사람들은 뭐가 행복해서 저러고 웃을까. 혹시 날 보고 비웃는 건 아니겠지. 어, 아니야. 정말 그런거 같은데. 저 사람을 가만 놔두면 안되겠다.”
이는 지난 2013년 경기도 평택에서 ‘웃는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이유로 승용차로 치어 행인 1명을 살해하고 11명을 다치게 한 40대 남성의 범행 당시의 소시오 패스적 심리 흐름을 가상 재연해본 것이다.
실제로 이 남성은 검찰 진술에서 “건강하고 활기찬 사람들이 무리지어 가는 것을 보면 차로 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진술했다.
우리사회에서 ‘욱질범죄’가 늘고 있는 것은 구성원들이 점차 속에서 생겨난 충동을 억제하거나 조절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충동조절장애(impulse control disorders) 환자가 최근 5년 동안 3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09년 3720명이던 충동조절장애 환자 수는 2010년 4375명, 2011년 4470명, 2012년 4937명, 2013년 4934명으로 5년 새 1214명(32.6%) 늘었다.
성별ㆍ연령별 환자 수는 2013년 기준 10대 남성이 1106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20대 남성 986명, 30대 남성 745명, 40대 남성 454명, 10대 여성 366명 등 순이다.
충돌조절장애는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반복하며 이러한 충동과 욕구를 스스로 억제하거나 조절하지 못하는 특징을 보인다. 충동적 행동을 하기 전 긴장이나 각성이 고조되고, 행동을 옮긴 후에는 일시적인 쾌감이나 다행이란 느낌, 또는 긴장의 해소를 경험하기도 한다.
실제로 얼마 전엔 서울 성북구에서 초등학생 딸과 아내를 둔 평범한 30대 가장이 충동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웃집 여성집에 무단 침입해 상습적으로 속옷을 훔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는 명문대 대학원을 나왔고 토목 회사를 운영하며 남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던 인물이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검거된 폭력범 36만6527명 중 15만2249명은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열 명 중 네 명이 홧김에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의학계에선 충동조절장애가 유전적ㆍ환경적ㆍ사회심리적인 요인이 복합 작용돼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분석 전문가들은 우리사회가 자아를 중시하는 교육풍토로 변화되면서 개인주의와 과도한 자기애로 ‘무시당했다’는 기분을 쉽게 느끼게 된 것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송재룡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진정한 의미의 자존감이란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더라도 심리적 피해를 덜 받는 것”이라며 “발끈하고 욱한다는 건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열등감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체 의식의 결여도 원인으로 꼽힌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충동을 느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해 자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이는 곧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이고 그 사람과 나는 결코 ‘우리’가 되지 못하고 타자화(他者化)시키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성공가도를 달려온 사람일수록 실패를 직면했을 때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대개 성공한 사람들이나 과도한 자기애를 보이는 사람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서 욱하는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며 “어느날 갑자기 슈팅스타가 됐는데 단 한번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질 때 겪는 충격은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경원ㆍ박혜림 기자/g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