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4년5개월만 기준금리 인하…대출금리는 오히려 올라
9일 기준 5대 시중銀 주담대 잔액 3영업일만에 다시 ↑
전문가들 “연말 은행 가계대출 관리기조 더 강화할 수”
[헤럴드경제=김광우·홍승희 기자] 국내 기준금리가 4년 5개월만에 내렸지만 대출금리가 따라 내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달 들어 감소세로 전환됐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주 간 단위로 다시 늘어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달부터 가계대출 증가세가 대폭 완화됐다고 밝혔지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만큼 아직 은행들이 대출액의 본격 둔화를 자신하고 금리를 내리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5대 시중銀 주담대 잔액 다시 늘어…주 단위로 ‘오락가락’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4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729조8898억원으로 전월 말(730조9671억원) 대비 1조773억원(0.14%) 줄어들었다. 약 반년 만에 처음으로 주택대출 잔액이 감소세로 전환한 것이다.
하지만 9일 기준 같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730조7458억원으로, 3영업일 만에 다시 8560억원 증가했다. 주담대를 신청·접수하고 일으키기까지 통상 한 달 반에서 두 달까지 걸리는데, 1~2달 전 접수됐던 신청분이 실현되면서 주 간 단위로는 잔액이 다시 증가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앞서 은행들은 지난 7월 이후 은행권 대출금리를 약 20차례 이상 인상한 바 있다. 9월을 기점으로 ▷유주택자 대출제한 ▷신용대출(마이너스통장) 연소득 내 제한 ▷갭투자용 전세대출 금지 등 강도 높은 대출규제도 이어갔다. 여기에 정부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 등의 정책까지 겹치면서 실제 9월 가계대출 증가세가 눈에 띄게 감소하기도 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계대출 총량이 8월에 많이 증가했지만, 스트레스DSR 2단계 도입 등으로 9월에는 상당폭으로 증가폭이 둔화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주택자 및 갈아타기 수요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각 은행은 실수요자를 위한 대출은 지장이 없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주문에 무주택자 및 1주택자(기존 주택 처분 조건)를 위한 대출문은 열어뒀는데, 이를 위한 수요도 만만치 않아 이달부터 다시금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은행권 “한은 기준금리 인하도 대출금리 내릴 순 없을 것”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도 은행권의 대출 문턱을 낮출수는 어렵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 수요를 조절하기 위해 은행이 시행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 가격(금리)을 높이는 것”이라며 “은행별로 상황은 다르겠지만, 기준금리에 따라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국내 시장금리는 기준금리 영향을 받긴 하지만 미국 등 글로벌 자금시장 영향도 크게 받는다”며 “최근 미국 국채 금리 급등 및 경제지표 결과를 감안했을 때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하 속도가 늦어질 것으로 예상돼 국내 시장금리도 급격히 내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은행권의 대출금리는 점점 더 낮아지는 시장금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10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5년 주기형 주담대 금리는 3.66~6.06%를 기록했다. 지난 6월 말(2.94~5.75%)와 비교해 금리 하단이 0.72%포인트나 상승하고, 금리 상단은 6%대를 돌파하는 등 그간 동결됐던 기준금리와는 달리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같은 기간 은행채 금리는 0.15%포인트 감소하며 격차를 벌렸다.
한은이 기대심리 자극하면 어쩌나…10~11월이 변수
일부 전문가들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집 사자’는 기대심리를 더욱 부추겨 결과적으로 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 기조를 더욱 조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미 주요 은행의 대출액이 연초 약속한 가계대출 증가분을 넘어선 상황에서, 이자부담이 덜어질 거라고 보는 금융소비자들이 대출을 받기위해 몰려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기준금리가 인하됨으로써 이미 빚을 낸 사람들이 이자부담이 줄어들거라고 생각을 할 것”이라며 “무주택자들에겐 대출문이 열려있는 현재 ‘금리가 떨어지니까 집을 사야겠다’는 기대심리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 등 서울 중심의 일부 신축 아파트 입주도 큰 변수다. 내달 27일부터 1만2000가구에 달하는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단지의 신규입주가 시작되는 가운데 잔금대출 수요만 약 3조원대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둔촌주공 잔금대출에서 노이즈(noise)가 안 나게 하기 위해서라도 은행들은 대출을 조금이라도 더 해줄 수 있는 룸(여력)을 만들기 위해 다른 대출을 오히려 더 잠글 수 있다”며 “기준금리가 내려도 대출금리는 연말까지 오히려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실제 금융당국도 가계대출의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는 둔촌주공 입주를 앞두고 경계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전날 국정감사에서 국내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 입주를 앞두고 대출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해 “(대출 규제 완화없이) 지금 기준으로 하는 부분을 그대로 적용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향후 10~11월의 가계대출 잔액 증가 추이가 주요 변수가 될 거란 전망이다. 박형중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소비자의 기대심리를 억제할 수 있다면 대출금리가 내릴 수 있겠지만 가까운 시일내에 대출 수요를 잠재우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연말까지 가계대출 추이가 굉장히 중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