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E&S 합병, 압도적 찬성
두산밥캣·로보틱스는 합병 철회
사업재편 당위성 ‘명분’서 갈렸다
금감원 직접 개입도 변수로 작용
[헤럴드경제=정윤희·김은희 기자] SK그룹과 두산그룹이 나란히 추진해 온 사업구조 개편안을 두고 끝내 희비가 엇갈렸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은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압도적인 찬성으로 주주총회를 통과했지만, 두산의 경우 주주들의 거센 반발과 금융당국의 제동으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안을 결국 철회했다.
1일 재계에서는 두 그룹의 희비가 갈린 결정적인 부분으로 사업재편의 당위성, 즉 ‘명분’을 꼽고 있다.
SK 역시 두산과 마찬가지로 재편 과정에서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불거졌지만, 11분기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SK온이 그룹 전반에 미치는 재무 부담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이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주주들에게 납득시키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SK는 올해 초부터 꾸준히 리밸런싱(사업재편) 작업을 진행하며 배터리 사업의 정상화를 강조해왔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SK E&S와의 합병 안건을 승인했다. 찬성률은 85.75%였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자산 100조원 규모의 ‘초대형 에너지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주식매수청구권 규모 산정이 남았지만 이 역시 큰 변수는 아니라는 관측이다.
두산도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첨단 소재를 3대 축으로 그룹 사업을 재편하는 데 주력했다. 이 중 스마트머신에서 성장성이 큰 로봇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그룹 ‘캐시카우’ 밥캣을 로보틱스와 합병하겠다는 계획에 관심이 집중됐다.
관건은 밥캣·로보틱스 간 합병비율(1대 0.63)이었다.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둔 뒤 합병해 두산밥캣을 상장 폐지한다는 구상이었지만 이를 두고 밥캣 주주들이 거세게 반발해왔다. 연 매출액 10조원에 육박하는 두산밥캣을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면서 책정한 1(두산밥캣)대 0.63(두산로보틱스)의 합병 비율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해당 비율이 자본시장법에 따라 상장사 기준시가에 근거해 정해졌더라도 금융당국은 이를 문제 삼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시가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산정했더라도 현행법상 일부 할증·할인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금융감독원은 무제한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를 예고했고, 국회에서는 주주가 합병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까지 발의됐다.
재계 관계자는 “SK는 계열사 합병 발표 직후 주주서면을 보내고, 긴급 간담회를 시행하는 등 합병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한 반면 두산은 그런 준비가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그러다보니 미래와 생존이 목적이라는 공통점에도 두산은 두산밥캣 소액주주와 시장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도 각각 대표이사 명의 주주 서한을 통해 “사업구조 개편 방향이 긍정적으로 예상되더라도 주주들과 시장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추진되기 어렵다”고 철회 배경을 밝혔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 역시 “결국 대의명분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주주 설득에 좀 무리가 있었지 않나 싶다”며 “(원안대로 추진할 경우)지주사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실질 지배력이 기존 13.8%에서 42%까지 늘어나게 되니까 아무래도 명분이 애매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너일가의 지배력을 키우는 합병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던 이유다.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개입도 차이점으로 꼽힌다. 상장사 사이의 합병은 금감원의 승인이 필요한데 따른 것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두산이 밥캣·로보틱스 합병을 철회한 결정적인 포인트로 금감원의 두 번째 증권신고서 정정요청을 꼽고 있다.
실제로 합병 형태가 상장사(SK이노베이션)-비상장사(SK E&S)였던 SK의 경우 금융감독원이 특별한 비판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 반면, 상장사(두산밥캣)-상장사(두산로보틱스)인 두산은 이복현 금감원장이 직접 나서 ‘무제한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를 예고했다.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에 반대한 국민연금은 당초 두산이 예고한 주주총회 날짜(9월25일)가 아직 남은 만큼 두산 사업재편과 관련한 의사는 밝히지 않은 상태다.
다만,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 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 간 분할합병은 지속 추진된다. 글로벌 수요가 폭발하는 원전 사업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 재원 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두산밥캣은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가 된다. 큰 틀의 재편 방향성은 그대로 가져가되, 밥캣·로보틱스 합병만 철회한 만큼 업계에서는 두산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업계 한 애널리스트는 “두산이 (에너빌·로보틱스) 분할합병까지 철회했으면 (사업재편을) 다 철회하는 것이겠지만, 여전히 절반은 추진하는 만큼 분할합병이 어떻게 될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금감원의 추가적인 정정 요구 및 주주들의 지속적인 반대 여부 등에 따라 사업재편이 일단락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