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거래 빈도가 크게 낮아져 이를 출시한 자산운용사 마저 사실상 비관리 상태로 방치하고 있는 이른바 ‘좀비’ 상장지수펀드(ETF)가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올 들어 국내 ETF 시장은 순자산 규모가 150조원을 훌쩍 넘어서고 상품수가 900개에 육박할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 투자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게 사실이지만 신상품 출시 주기가 짧아지고 기존의 비인기 상품들을 찾는 수요가 급감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운용사 간 과열 경쟁 탓에 ‘카피캣(모방)’ ETF까지 난립하면서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28일 코스콤·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6일 기준 국내 상장 ETF는 총 883개로 2022년 말(533개)보다 65.7%(350개) 급증했다. 올 들어서만 99개 상품이 신규 상장했다. 이에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 수(845개)도 넘어섰다. 이 추세로라면 900개 돌파도 시간 문제다.
하지만 상장 기본 요건에 미달하는 상품도 쏟아지고 있다. 순자산총액이 50억원이 안 되는 ETF는 72개로, 작년 말 대비 23개(46.9%)가 늘었다. 거래소는 반기마다 순자산 총액이 50억원 미만인 종목을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1년 연속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경우 상장 폐지될 수 있다. 10개 중 1개(0.8%) 정도가 상폐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거래량이 말라가는 ‘좀비’ ETF도 32개에 달했다. 30개 넘는 상품들이 순자산 50억원 밑돌고 3개월 평균 거래량 1000주도 못 채웠다. 구간별로는 ▷300주 미만(7주) ▷300주 이상 500주 미만(8주) ▷500주 이상 1000주 미만(17개) 순이다. 이들 중 실제 평균 거래대금이 500만원도 되지 않은 종목은 15개에 달했다.
시장에선 좀비 ETF가 늘어난 여러 배경엔 저렴한 수수료를 앞세운 대형 자산운용사의 인기 ETF로 거래가 쏠리는 현상이 강해진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공들여 신상품을 개발해도 점유율이 큰 대형사가 유사 ETF를 선보이면 거래도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운용사들이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자진 상폐에 소극적인 이유도 있다”고 했다. ETF는 상장폐지가 되더라도 주식처럼 휴지 조각이 되지는 않는다. 상장폐지가 되면 ETF가 편입한 주식이나 채권을 매도해 현금화한 뒤 투자자에게 지급하기 때문이다.
한편, 거래소 관계자는 “현재 해외 ETF 시장의 상장 및 상장폐지제도에 대한 연구 용역이 진행 중”이라며 “연구 결과에 따라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을 논의해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