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되는 예금금리 인하에도 은행 예금에 ‘자금 쏠림’
5대 은행에만 한 달간 18조원 몰려…‘막차’ 수요 집중
‘증시 혼란’에 은행 예금 더 찾아…이틀 만에 1조원 유입
은행 이자장사 재시동 걸린다…예대금리차 확대 전망도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고모(29) 씨는 올 초에 오랜 기간 들었던 적금을 해지하고 약 3000만원의 자금을 주식에 투자했다. 우량 종목을 위주로 투자한 고씨의 수익률은 한 때 약 30%에 달했다. 하지만 7월 말 이후로 급락하기 시작한 수익률은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마이너스’에 접어들었다. 고씨는 “꾸준히 저축을 할 걸 그랬다”며 “금리가 더 떨어지기 전에 예금에 돈을 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예금금리 하락에도 불구하고, 은행으로 대거 자금이 몰리는 ‘역(逆)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 인하를 전망한 ‘막차’ 수요가 은행에 몰린 영향이다. 심지어 이같은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경기침체 공포심리에 따른 증시 변동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위험을 방어하려는 안전자산 수요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는 예금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자금 유입이 이어지면서, 수익성 지표가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형성되고 있다.
5대 은행 예금, 한 달 만에 18조원 몰렸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정기예금 잔액은 909조3403억원으로 6월 말(891조1524억원)과 비교해 18조1879억원가량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3조6316억원이 늘어난 지난 2월 이후 약 5개월 만에 나타난 최대 증가폭이다.
이른바 ‘막차’ 수요가 은행에 몰린 영향으로 보인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고조됨에 따라, 향후 예금금리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 해당 상품에 가입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대기 자금으로 분류되는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609조6922억원으로 한 달 만에 30조원가량 줄었다.
주요 은행들은 지난달을 시작으로 수신상품 금리를 줄줄이 인하한 바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7월 1일부터 일부 정기예금 상품 금리를 0.1~0.2%포인트(p) 내렸다. 우리은행은 7월 15일부터 주요 정기예금 상품 금리를 최대 0.3%p 인하했다. 케이뱅크는 지난달에만 총 2차례 정기예금 금리를 하향 조정했다.
이달 들어서도 이같은 금리 인하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고조됨에 따라,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금리가 하락한 영향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은행채(1년물, AAA) 금리는 3.220%로 지난 7월 초(3.476%)와 비교해 0.2%p 이상 줄었다. 이에 국민·신한·농협은행 등에서 이달 약 0.2~0.35%p의 예금금리 인하를 결정한 상태다.
안전자산 선호 두드러져…은행 ‘수익성’ 향상 기대감↑
은행권에서는 금리 인하 신호가 본격화되며, 이같은 예금 수요가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해온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증시가 폭락하는 등 증시 변동성이 커지며, 되레 안전자산 예금을 찾는 고객이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형성된다. 예금금리가 인하가 진행된 이달 들어서도 5대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2영업일 만에 약 1조2279억원가량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6월 전체 증가폭(1조4500억원)과 유사한 수준이다.
증시 불안감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늘어나며 채권 강세 현상 또한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전 거래일보다 13.3bp(1bp=0.01%p) 내린 연 2.806%에 장을 마쳤다.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해 12월 14일(20.7bp 하락) 이후 최대폭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안전자산을 찾는 고객이 늘어날 경우 예금 유입에 따라 예대금리차가 벌어지며, 하반기 은행 수익성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은행권은 수차례 가산금리 인상을 통해 공급 관리에 돌입했다. 실제 주요 은행들은 최근 한 달간 최대 5차례 가량의 가계대출 금리 인상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정기예금을 중심으로 한 수신금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은행채 금리도 줄어들며,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물꼬도 트일 것으로 보인다. 낮은 비용으로 충분한 자금 조달을 이어가면서도, 이와 비교해 높은 금리의 대출을 판매하며 차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지난 6월 5대 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예대금리차는 0.514%p로 전월(0.7%p)과 비교해 0.186%p가량 축소된 바 있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주담대를 중심으로 한 금리 인하 추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전에도 증시가 흔들리는 현상이 나타날 경우, 은행 정기예금을 찾는 고객이 늘어나는 현상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면서도 “아직 섣불리 수익성을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