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하필 해충들만 강하다니…”
꽃가루를 옮겨 열매를 틔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바로 꿀벌을 비롯한 곤충들이다. 전세계적으로 꿀벌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어 자칫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꿀벌이 줄어드는 원인으로 살충제, 기온의 변화, 대기 오염 등 여러 원인이 제시되는 가운데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인간에게 유익한 곤충들이 해로운 곤충보다 대기오염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다.
지난 1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된 영국 레딩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꿀벌과 같은 유익한 곤충이 진딧물 등 농작물에 해를 입히는 곤충보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120개 논문을 분석해 19개 국가의 곤충 40종이 대기오염 물질에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지 조사했다. 곤충은 수분과 해충 방제, 분해 등으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익충과 농작물 등 식물에 경제적으로 피해를 끼치는 해충으로 나눴다.
이 곤충들에 영향을 주는 대기오염물질은 오존, 질소산화물, 이산화황, 미세먼지 등 4가지로 추렸다. 모두 인간 활동으로 인해 늘어난 오염물질이다. 대기 중 오존 농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질소산화물은 주로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이산화황은 화석 연료, 특히 석탄을 태울 때에 발생한다. 이 오염 물질들이 복잡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미세먼지가 형성된다고 봤다.
연구 결과 익충이 4가지 오염물질에 노출되면 먹이를 찾는 능력이 22.2%에서 최대 39.3%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주요 해충의 먹이 탐색 능력은 -8.3%~8.4%로 오염물질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염물질 중에서도 오존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익충이 오존에 노출될 때 먹이 탐색 능력은 35% 줄어들었다. 특히 인간에게는 해롭지 않을 정도로 오존의 농도가 낮을 때에도 익충이 꽃을 방문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유독 익충들이 대기오염 물질에 취약한 건 이들이 냄새에 기반해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대기오염물질이 냄새를 화학적으로 바꾸거나, 익충들이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해충이 대기오염 물질의 영향을 덜 받는 이유도 의사소통 방식에 있다. 해충들은 냄새보다는 직접적인 접촉이나 시각적 신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오염 물질이 익충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건 국내에서도 연구된 바 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연구팀과 세계자연기금(WWF)은 지난 2월 ‘대기오염으로 인한 꿀벌 시정 거리의 감소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대기오염이 증가하면 바깥에서 꿀을 채집해오는 일벌의 방향감각이 저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4~7월 꿀벌 집단의 일벌 2500마리의 활동 시간을 추적한 결과 PM2.5의 미세먼지가 400㎍/㎥ 이하일 때 일벌은 평소보다 1.7배 더 오래 먹이를 탐색했다. 연구진은 이를 꿀벌의 먹이 탐색 능력이 떨어진 증거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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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딩대 연구진은 “농업집약화, 기후변화, 침입종 등 익충이 직면한 다양한 환경 압박 중 대기오염의 영향은 그동안 간과됐다”며 “익충이 대기오염 물질에 취약한 데 비해 해충은 부정적인 영향을 덜 받는다는 점은 식량위기에 더욱 위협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