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어느 곰을 살리고, 어느 곰을 죽여야 합니까.”
현재 국내에선 280마리 곰이 살고 있다. 웅담 채취 등을 목적으로 우리에 갇혀 사육된 곰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2026년부턴 이 같은 곰 사육과 도살이 금지된다.
문제는 남은 280마리의 곰. 이제 이들의 운명은 1년 반 뒤에 결정된다. 정부 보호시설에 수용될 수 있는 개체는 이들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선택받지 않은 곰은, 사실상 모두 죽을 운명이다.
곰 사육 종식과 구출을 이끌어왔던 동물복지단체들은 단순히 생사를 넘어서 동물의 본능을 살리고, 고통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단법인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16일 ‘사육곰 농장 현장조사 결과 공유회’에서 “최대한 많은 곰을 살려서 농장 밖으로 빼는 것이 목적”이라면서도 “결국 살릴 곰과 죽일 곰을 판단할 기준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1000마리가 넘던 사육곰들은 현재 20개 농장에 280마리(3월 기준) 남아 있다. 정부가 마련할 보호시설에는 120~130마리만 들어갈 수 있다. 곰 사육과 도살이 금지됐는데도 150마리의 곰은 갈 곳이 없어 꼼짝 없이 죽을 위기에 처한 셈이다.
곰 사육이 금지되는 2026년 전에 곰들을 도살하겠다는 농장주들은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국의 곰 농장주 18명과 진행한 면담에 따르면 곰을 보호시설에 보내고 싶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심지어 사육곰을 친근한 관계로 여기고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농장주들도 있었다.
문제는 곰들을 구출하려면 결국 농장으로부터 곰들을 사들여야 한다는 데 있다. 사육곰들은 곧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다. 농장주들이 원하는 액수는 마리당 1500만~2000만원 선. 이대로 모든 곰을 구출하려면 21억~56억원이 소요된다. 여기에 보호시설 운영 비용으로도 연간 10억원 가량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곰 구출 규모와 비용을 농장주와 동물복지단체가 협상을 통해 결정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동물복지단체들은 이같은 정부의 태도가 곰 사육을 급지한 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농장들에 도살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 법상 10살이 넘은 곰은 도살할 수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남은 곰 280마리 중 267마리는 2010년 이전에 출생했다. 가장 어린 곰도 2015년생 네 마리다. 곰 사육이 금지되는 2026년 이전에 갈 곳 없는 곰 150마리가 모두 도살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현실적으로 모든 곰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면, 최소한 ‘고통 없이’ 죽을 기회는 줘야 한다는 게 곰보금자리프로젝트의 주장이다. 농장주들이 곰을 도살하도록 두지 않고 정부가 곰들을 구출한 뒤 안락사를 하는 방식이다.
농장에서 곰을 도살하는 방식은 안락사와는 거리가 멀다. 곰 농장에서는 곰을 도살할 때에 주로 근육이완제를 주사한다. 약물의 용량이 클 때에는 의식이 있는 채로 호흡근이 이완돼 질식사하게 된다.
혹은 질식사가 일어나기 전에 혀나 겨드랑이의 동맥에 자상을 내 과다 출혈로 죽인다. 일부 농장주는 올가미로 목을 매달아 죽이기도 한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보고서를 통해 “동물의 삶의 질을 생각해 볼 기회가 많지 않은 농장주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동물의 목숨”이라며 “곰의 생애에서 생명이 가장 중요하고 곰의 통증이나 고통은 이해하기 어려워 보였다”고 설명했다.
살아가게 될 곰들에게 어떤 환경을 마련할 지에 대한 고민도 뒤따라야 한다. 나무에 오르거나 물에 몸을 담그는 등 야생에서 곰의 습성을 되살려 줄 수 있는 보호시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같은 운영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곰 보호시설이 자칫 곰 전시시설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곰보금자리프로젝트의 우려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곰이 가진 본능과 행동 욕구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삶을 제공해야 한다”며 “한국 사회가 사육곰을 가두고 착취했던 긴 세월에 마땅히 책임을 지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