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기업, AI 테스트베드로 인도 선호
MS, 텔랑가나주 투자...印실리콘밸리 노려
정부의 자금 지원·풍부한 공학 인재풀
반도체 산업규모 2032년 3배로 확대 전망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인도 시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14억 인구라는 거대 시장과 풍부한 IT 인력 뿐만 아니라 인도 정부가 막대한 지원을 쏟아 붓고 있어서다. 지방정부들도 인도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주를 잇기 위한 경쟁이 한창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거대 IT 기업들이 속속 인도 인공지능(AI)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은 인도를 AI 테스트베드(시험장)로 보고 현지 언어로 AI 음성비서와 챗봇을 선보이고 있다. 힌디어를 비롯해 22개의 공식언어와 수천개의 방언을 사용하는 인도야말로 다양한 언어모델을 시험하기에 좋다는 판단에서다.
구글의 경우 지난달 9개의 인도 언어로 제미나이 AI 비서를 출시했고, MS의 코파일럿 AI 비서도 12개 인도 언어로 사용이 가능하다.
▶AI 산업 허브, 텔랑가나주...MS, 37억달러 투입=인도 남부의 텔랑가나주는 한때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IT 산업이 주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텔랑가나주의 주도인 하이데라바드는 ‘사이버(Cyber)’라는 단어를 합친 ‘사이버라바드’(Cyberabad)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텔랑가나주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주의 IT 수출량은 2023년 2.4조루피(약 39조8880억원)로 2014년 대비 네 배 이상 증가했고, 일자리는 90만개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텔랑가나주가 인도에서 IT 도시로 부상한 배경에는 MS와 구글 등 기술 공룡 기업들의 투자가 있다.
MS는 텔랑가나주에 약 37억달러(약 5조1337억원)를 투자했다. 시장조사기업 스트럭처 리서치에 따르면 MS는 660메가와트(MW) 용량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위해 인도 내 토지 매입도 끝냈다. 이는 유럽 내 50만 가구의 연간 전력 사용량과 맞먹는 규모라고 FT는 전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텔랑가나주와 협약을 맺고 2030년까지 3조6300억루피(약 6조366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텔랑가나주 찬단벨리, 하이데라바드에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센터 3개를 건설할 계획이다.
글로벌 빅테크의 잇딴 투자에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주를 따라잡겠다는 텔랑가나주의 각오가 현실이 돼가는 모습이다. 카르나타카주에 있는 벵갈루루에는 인도 유수의 스타트업과 액셀레이터들 뿐만 아니라 HP, 인텔 등 수천 개의 IT기업이 입주해 있다.
▶AI 산업 육성 전폭적 지원하는 인도 정부=인도 정부는 AI 산업 육성을 위해 정책적 지원을 쏟아내고 있다.
인도 정부는 AI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AI 미션(AI Mission)’을 발표하고 향후 5년간 1037억2000만루피(약 1조7186억원) 규모의 투자금 지출을 지난 3월 승인했다. 올해 4월부터 내년 3월까지는 승인된 투자금 가운데 200억루피(약 3331억원) 이상을 AI 스타트업에 지원할 계획이다.
인도 정부는 AI 미션을 통해 1만개 이상의 그래픽 처리 장치(GPU)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제공되는 등 자국 내 AI 생태계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인도 전자정보기술부 산하 스타트업 허브(MSH·MeitY Startup Hub)는 143개의 신생 스타트업와 훈련센터를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IT 기업을 흡인하는 인도의 또 하나의 매력은 풍부한 공학 인재풀이다.
컨설팅 기업 ‘베이 앤 컴퍼니’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는 전세계 AI 인재의 16%를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MS 인도법인의 직원 2만3000명 가운데 약 3분의 2가 엔지니어로, 이들 대부분은 하이데라바드에서 근무하고 있다.
▶반도체 굴기...동아시아 공급망 판도 뒤흔든다=내수시장과 IT 인력을 기반으로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의 과정을 자국 내에서 한다는 것이 인도의 목표다. 시장조사회사인 커스텀 마켓 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 반도체 산업 규모는 343억달러(약 47조원)였지만 스마트폰, 자동차 부품 등에 대한 수요 증가로 2032년에는 3배 수준인 1002억달러(약 136조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인도 정부는 반도체 제조, 기술 개발을 위한 글로벌 센터로 만든다는 목표로 서부 구자라트주와 동북부 아삼주에 3개의 반도체 공장 건설을 위한 투자금 1조2500억루피(약 20조원7500억원)를 쏟아부었다. 구자라트주에는 웨이퍼 제조공장과 반도체 후공정 및 테스트(OSAT) 공장이, 아삼주에는 OSAT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인도 타타그룹 계열사인 타타전자는 구자라트주 돌레라 특별투자지역(DSIR)에 인도 최초로 12인치 웨이퍼를 생산하는 제조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아삼주 자기로드에는 OSAT공장을 지을 예정이며, 이는 인도 북동부 지역의 최초 반도체 공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타타그룹의 지주회사 타타 선스의 나타라잔 찬드라세카란 회장은 “우리는 제휴 기업과 함께 2026년 내에 돌레라 반도체 공장 가동에 들어갈 것”이라며 “아삼주에 건설할 공장은 이보다 빠른 2025년 말 또는 2026년 초에 먼저 완공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마이크론은 구자라트주에 27억5000만달러(약 3조8156억원) 규모의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세우고, 올해 말부터 생산에 들어간다.
한국 기업 가운데는 반도체 장비 및 솔루션 제조업체인 심텍이 구자라트 주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마이크론의 생산거점 인근인 사난드에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인도 동북부 오디사주 주에는 미국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시놉시스가 지난해 11월 주도 부바네스와르에 최초로 반도체 연구 개발 센터를 개소했다. 이 센터에는 300명 이상의 초대형 집적회로(VLSI) 개발자와 반도체 설계 기술자들이 근무한다.
시놉시스가 오디사주에 들어설 수 있었던 데에는 주정부의 지원이 컸다. 오디사주는 반도체 공장(팹)과 반도체 설계 전문(팹리스)에 대한 ‘혁신 가속화 프로그램’(O-Chip)을 통해 스타트업, 연구원, 학생들에게 멘토링, 자금 지원을 하고 있다.
사티아 굽타 인도 VLSI 학회장은 “반도체 선도국이 되기 위해선 인도 전역에 걸쳐 반도체 설계 생태계를 조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최소 1000개의 반도체 설계 기업을 세우고 연간 100만 명의 반도체 설계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