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윤상현 “첫단추라도 꿰어야”
유승민·안철수 “미래세대 큰 고통”
해외직구 때린 한동훈, 엿새째 침묵
與 내부서도 “이재명 잔꾀에 걸렸다”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국민연금 모수개혁 우선 처리’를 놓고 여권 당권주자들의 입장이 엇갈렸다. 일부 주자들은 구조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며 민주당 제안을 일축한 현 지도부에 힘을 실은 반면, 일부는 “첫단추라도 꿰자”며 온도차를 보였다. 유력주자로 주목받는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엿새째 침묵 중이다.
나경원 전 의원(서울 동작을 당선인)은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초청 토론회에서 이 대표의 제안과 관련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그 정도로 이재명 대표가 여러 제안을 했다면, 우리가 모수개혁이라도 진행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답했다. 22대 총선 5선 고지에 오른 나 전 의원은 “실질적으로 국회 원 구성이 녹록지 않고 여러 대립이 많이 예상되는 부분이 있어서 사실상 모수개혁이라도 먼저 받아야 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많은 것 같다”며 “저는 처음에 굉장히 부정적이었는데, 첫단추라도 꿰어야 되는 게 아닌가”고 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당대표 선거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한 달 전에 (가능성이) 60%였다면, 지금은 55% 정도”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수도권 당권주자로 꼽히는 5선의 윤상현 의원(인천 동·미추홀을)도 같은 날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실 저도 여야 간 합의를 빨리 하자는 입장”이라며 “모수개혁 합의만 하는 것도 대단히 긍정적인 평가”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은 다 하기가 정말 힘들다”며 “(연금개혁안을) 28일 본회의에 올리는 것은 정략적인 의도로 읽히니, 다음 국회가 시작하자마자 첫 본회의 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안을 가장 먼저 원포인트로 통과시키자”고 중재안을 제안했다.
반면 비윤 당권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이 대표의 제안에 대해 “그저 기금 고갈을 몇 년 늦출 뿐이다. 도대체 이걸 무슨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조삼모사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유 전 의원은 “연금재정안정과 노후소득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려면 모수만 조작해서는 불가능하다”며 “구조개혁과 재정투입을 모수조정과 병행해야 한다”고 사실상 당론을 주문했다. 안철수 의원도 “세 가지 노림수가 있다. 첫째, 어차피 여당이 받지 않겠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부담을 쌓자는 계산”이라며 “둘째, 거대 야당이 왜곡해서 밀어붙였던 연금개혁 실패에 대한 면피. 셋째, 특검, 탄핵만 남발하는 이재명 민주당의 이미지 제고”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재명식 연금개혁은 결국 우리 청년들과 미래세대에게 크나큰 고통을 떠넘기고 연금제도를 파탄낼 것”이라고 했다.
엇갈린 당권주자들의 반응에 여권에선 “이재명의 늪에 빠졌다”는 자조가 나왔다. 총선 참패 이후 ‘한동훈 책임론’을 놓고 이견이 분출되는 사이 국정과제 논의 주도권마저 야당에 빼앗겼다는 지적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연금개혁 논의는 채상병 특검 등 민주당이 주도하는 정국을 뒤집을 카드가 될 수 있는데도, 결국 이재명 대표의 한마디에 자중지란하는 꼴이 됐다”고 했다. 지난 총선 동대문갑에 출마했던 김영우 전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이 총선백서 권력투쟁을 하는 동안 이재명의 잔꾀에 완전히 걸려들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해외직구 정책 발표 때와 달리 침묵하는 한 전 위원장의 행보를 놓고선 여러 해석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연금개혁은 정치적 내공이 필요한 주제라 정치초년생인 그가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라며 “자칫 입장을 내놨다가 ‘엘리트’ 수식어만 부각시킬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