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아이폰만 써오다 업무 때문에 삼성 갤럭시폰으로 갈아탔는데, 도저히 그 감성을 잊지 못하겠네요.” (온라인 직장인 커뮤니티)
대한민국 미혼, 20·30세대, 여성, 중위소득 이상 인구에겐 하나의 ‘감성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애플 아이폰이 글로벌 시장에서 만큼은 부진을 면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분기 매출이 급감하면서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더 주목한 부분은 불투명한 과거와 현재가 아니라 ‘미래’였다. 역대 최대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힌 데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주력 제품에 인공지능(AI) 기술을 대거 탑재할 것이란 점을 예고한 날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높게 날아 올랐다.
전문가들은 애플이 그동안 글로벌 증시를 강타했던 AI 랠리에 뒤늦게나마 탑승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그동안 주가 하락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서학개미(서구권 주식 소액 투자자)’들의 고민도 해소될 지 관심이 집중된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1분기(회계연도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한 907억5000만달러 규모의 매출을, 순이익도 2% 줄어든 236억4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충격적인 수치는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이폰 매출(459억6000만달러)이 시장 전망치(460억달러)와 비슷했지만, 1년 전(513억3000만달러)보다 10% 이상 감소했다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은 중국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 부활 등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9.1% 줄어든 바 있다.
이런 모습은 강력한 충성 고객층을 기반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국내에서의 상황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최근 통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선보인 아이폰 15가 전작보다 판매량이 20~30% 늘어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오랜 라이벌인 삼성전자의 본거지인 한국에서 아이폰 판매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한국 내 아이폰 구매가는 일본, 중국 등 주변국에 비해서도 10만원 가량 높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국내 젊은층 사이에서 아이폰이 하나의 아이콘이 되면서 프로모션의 필요상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스마트폰 선택 시 브랜드에 따른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조사해 발표한 ‘휴대용 전자기기 브랜드 선택에 관한 탐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미혼 응답자 중 17.8%가 ‘애플’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고 응답, 기혼자(3.0%)에 비해 6배 가까이 더 높게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10대(22.7%)와 20~30대(15.7%)에서 높은 선호도를 보였고, 40~50대(2.4%), 60대 이상(0.5%)으로 연령층이 높아질 수록 선호도가 급감했다. 소득에 따라선 중위소득 이상 가구에 속한 경우 이용률(11.2%)이 미만일 떄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성별에 따라선 여성(9.2%)이 남성(6.9%)보다 근소하게 높았다.
글로벌 시장에서 그동안 보여온 부진은 주가에 반영된 모양새다. 애플 주가는 지난 2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173.03달러로 올해 들어서만 6.79%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주요 경쟁 기업들이 미래를 위한 화두로 삼았던 AI에 대한 대응에 애플은 실패했단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최준원 신영증권 연구원은 “애플은 그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흐름을 주도해왔는데 삼성, 화웨이, 샤오미 등 다른 기업들이 AI 모멘텀을 살리는 흐름을 좀처럼 같이 타지 못하면서 시장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였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일(현지시간)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쿡 CEO가 밝힌 AI 관련 ‘청사진’이 답답했던 애플 투자자들의 묵은 체증을 풀어준 분위기다.
쿡 CEO는 차주 새로운 아이패드 출시와 내달 열리는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WWDC)에서 AI와 관련해 “앞으로 몇 주 안에 큰 발표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생성형 AI에 대해 “제품 전반에 걸쳐 큰 기회가 있다 믿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24에 AI 기능을 탑재하며 시장의 큰 관심을 받았던 것처럼 애플 역시 아이폰 16 등 신형 모델에 AI 기능을 탑재한다는 등의 내용을 발표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진 것이다.
1100억달러(약 151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힌 것도 투자자들에겐 더 큰 희망을 주는 소식이었다. 전년 동기(900억달러) 대비 22% 늘어난 수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앞서 애플 측이 공개한 재무제표를 종합하면 애플이 2021~2023년 자사주 소각에 사용한 비용은 해마다 117조원·124조원·107조원에 이르고, 배당금 지급에도 20조원·21조원·21조원을 썼다. 같은 기간 애플의 순이익이 각각 131조원·138조원·134조원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순이익의 대부분 혹은 그보다 많은 비용을 자사주 소각과 배당에 사용한 셈이다.
당장 2일(현지시간) 장 종료 이후 ‘시간 외 거래’에선 주가가 183.46달러로 6.03%나 치솟았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 사이에서도 애플 투자의 인기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SEIBro)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서학개미의 애플 주식 보유량은 42억7830만달러(5조8266억원)으로 새해 첫날의 50억3220만달러(약 6조9570억원)에 비해 15%가량 감소했다. 같은 기간 AI 최대 수혜주인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이 10% 넘게 늘어난 흐름과도 대조적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AI에 대한 애플의 모멘텀이 확인된다면 성장 가능성을 보고 충분히 서학개미들의 투심을 다시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앞서 애플은 2분기 실적 전망치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쿡 CEO와 루카 마에스트리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매출 증가를 예상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같은 매출 증가 전망은 애플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려온 투자자들에게 안도감으로 다가왔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최근 시장 낙관론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달 29일 투자회사 번스타인은 애플에 대한 투자 등급을 ‘중립’에서 ‘매수’로 올려 잡으며 눈길을 끌었다. 이는 2018년 중립으로 하향한 지 6년 만이다. 목표가는 195달러로 제시했다. 최근 중국에서의 아이폰 판매량 부진은 구조적인 사안이 아닐 뿐더러 중국 소비자들이 신제품 특징에 민감하면서 변동성도 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오는 9월 출시 예정인 아이폰16이 실적을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