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부산 엑스포 불발 이어 세 번째

여권 국정쇄신 요구 속 의료개혁 국한 눈길

“공직생활동안 단 한번도 쉬운 길 가지 않았다”

尹 대통령, 총선 D-9 ‘의료’ 원포인트 대국민담화[용산실록]
윤석열 대통령은 1일 대국민담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방침을 재확인하고 의료계에 건설적인 대화에 나설 것을 거듭 촉구했다. 윤 대통령이 전날 부활절을 맞아 서울 강동구 소재 명성교회에서 열린 ‘2024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에서 성경책을 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헤럴드경제=신대원·서정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방침을 재확인하고 의료계에 건설적인 대화에 나설 것을 거듭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은 늘 열려있는 법”이라며 의료계가 무조건적인 반대보다 합리적 근거를 들고 정부와 대화에 나서야한다고도 설득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통령실에서 50분 가까이 이어진 대국민담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의대 정원 2000명 확대가 의료개혁을 위한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는 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또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과정에서 의료계와 충분히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해왔다고 소개하면서 의료계에 명확한 요구 사안이 뭔지 입장을 정리해줄 것과 대화에 나설 것을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담화에서 “정부의 의료개혁은 필수의료, 지역의료를 강화해 전국 어디에 살든, 어떤 병에 걸렸든,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위해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일시에 2000명을 늘리는 것이 과도하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정부가 주먹구구식, 일방적으로 증원을 결정했다고 비난한다”면서 “결코 그렇지 않다.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이고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며 일부의 비판에 대해 적극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저는 공직생활을 할 때부터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면서 건전재정 기조 유지와 한일관계 개선, 원전 정책 정상화, 사교육 카르텔 혁파, 화물연대 집단 운송 거부 사태 사례 등을 일일이 거론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특정 현안에 대해 대국민 담화에 나선 것은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와 2023년 11월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불발 관련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 카드를 빼든 것은 의정갈등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의대교수와 개원의들이 이날부터 진료 축소에 나서겠다고 예고하는 등 의료공백을 넘어 의료대란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환자와 국민 불안감이 증폭되는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지난달 25일부터 외래진료와 수술, 입원, 진료 근무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으로 줄인 데 이어 이날부터 외래 진료를 최소화해 중증·응급환자 치료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도 이날부터 근무시간을 줄이고 중증·응급환자 진료 유지를 위해 수련병원별로 외래와 수술을 조정하겠다고 전날 의결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역시 개원의들이 4월1일부로 주 40시간 근무시간을 지키는 준법진료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에 따라 환자와 가족은 물론 국민적 차원에서 의료대란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증폭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충북 보은군에서 물웅덩이에 빠져 응급치료를 받고 맥박이 돌아왔지만 상급종합병원 전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9곳의 병원으로부터 이송을 거부당한 생후 33개월 여아가 다시 심정지 상태를 거쳐 결국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다만 윤 대통령이 대국민담화까지 가지며 대화를 촉구하고 나섰지만 의료계가 호응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윤 대통령이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고 급격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헌법적 책무’를 강조한 것도 이들의 반발을 고려한 맥락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에 유연한 처리를 당부하며 의료계와 협의체를 구성해 긴밀히 소통할 것을 지시했지만 의제 조율이나 협의체 구성은 요원한 상태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이 4·10 총선을 9일 앞둔 시점에 정국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 없이 ‘의료’에 국한한 원포인트 대국민담화에 나섰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현 정부 심판론’이 확산되면서 여당인 국민의힘 내에서는 윤 대통령이 의대증원에 있어서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국정쇄신에 대한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경남 김해을에 출마한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국민을 실망시키고 분노하게 한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면서 윤 대통령이 국민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며 대통령실과 내각의 즉각 총사퇴를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의대 정원 확대로 의제를 좁힌 것은 선거 개입 논란을 회피하면서도 국민의 관심이 큰 현안을 둘러싸고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중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윤 대통령은 “지난 27년 동안 국민의 90%가 찬성하는 의사 증원과 의료개혁을 그 어떤 정권도 해내지 못했다.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갈수록 더욱 공고해졌다”면서 “이제는 결코 그러한 실패를 반복할 수 없다”며 의료개혁에 있어서 지난 정부들과의 차별화를 부각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