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인장에 국새 이미지 차용…2020년 선거에 불복

권력 앞세워 대통령 이미지 강조…재판서도 큰 소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월 22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라코니아에서 유세하고 있다. 연합뉴스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퇴임(2021년 1월 20일) 5일 후 그의 최측근 보좌관인 마고 마틴은 스콧 가스트 변호사에게 ‘제45대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사용할 공식 인장’의 승인을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승인을 변호사에게 부탁한 이유는 평범한 인장이 아니라 거의 미국 국새를 본뜬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국새처럼 독수리가 눈에 띄는 인장은 컨설턴트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미묘하게 변형한 것이었다. 마틴 보좌관은 “상표 문제를 피하기 위해 몇 가지를 바꿨다고 한다”며 가스트 변호사에게 디자인이 승인 가능한지 자문을 구했다.

올해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는 ‘전직’ 대통령이지만 권력과 이미지를 앞세워 ‘현직’ 대통령처럼 행세하고 있다.

전임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독자적인 인장과 달리 국새 디자인을 차용한 인장을 자신의 홈페이지와 성명 등에 사용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진영과 지지자들은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패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선거 부정이 있었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유권자 중 대다수는 트럼프를 ‘패배한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부당하게 폐위된 대통령’으로 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시간) 전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가 진정한 승자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그의 재선이 중대한 선거 부정을 수정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현실 부정에 대한 이같은 동조는 그가 올해 공화당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며 선두를 달리는 데 큰 힘이 됐다.

홈페이지에 美국새까지…전직인데 현직처럼 행세하는 트럼프[디브리핑]
미국 국새(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인장(오른쪽) 이미지. [사진=123RF, 트럼프 전 대통령 홈페이지]

그는 퇴임 후에도 대통령 임기가 끝난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거부했다.

백악관 기밀문서를 플로리다주에 있는 자신의 별장인 마러라고 리조트에 불법 반출하고 보좌관들과 지인들에게 자랑한 데 이어 반환도 거부해 결국 연방검찰에 기소됐다. 2017년 한 하원 의원에게 대통령이 된 것에 대해 “나는 평생 내 직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 대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성명이나 보도자료를 낼 때도 ‘전직 대통령’이라고 밝히기보다 ‘45대 대통령’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모방한 ‘트럼프포스원’이라는 이름의 비행기를 타고, 차량이나 경호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용하면서 현직 대통령같은 이미지를 형성하고자 했다.

공화당 내 유일한 경선 경쟁자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에 대해서도 자신이 대사로 임명해 자기 밑에서 일했고, 헤일리의 외교 정책 업적도 자신의 공으로 돌리며 재임 시절을 강조했다.

4차례에 걸쳐 총 91개의 혐의로 형사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역대 대선 후보 중 처음으로 형사 소송 피고인의 신분으로 대통령직에 도전하면서도 오히려 당당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밀문서 유출 혐의에 대해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 혐의에 대해선 대통령의 면책특권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법원 출석 당시에는 차량 내부에 카메라를 설치해 달라는 언론사들의 요청을 수용해 피고인에게 유죄 인정 여부를 묻는 기소사실인부절차를 자신을 홍보하는 라이브 TV 방송으로 만들었다.

28년 전 성추행 피해자인 E. 진 캐럴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달 열린 민사소송 재판에서는 피고로 참석했음에도 원고의 증언 과정에서 큰 소리로 불평하거나 빈정거리는 발언을 해 루이스 캐플런 판사에게 경고를 받았다. 또한 판사를 향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족 회사인 트럼프 그룹의 금융 사기 혐의 관련 재판에서도 아서 엔고론 판사를 큰 소리로 비난해 논란을 일으켰다. 원고 측 변호사들이 그의 재판 방해에 대해 항의하자 트럼프 측 변호사 크리스 M. 키세는 판사를 향해 “미국의 전 대통령이자 아마도 곧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분에게 자신을 해명할 수 있는 약간의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직에 대한 그의 집착은 소셜미디어(SNS)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퇴임 후 정치에서는 물러나 조용히 지낸 다른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 6일 자신의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하도록 부추긴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트위터와 페이스북 사용이 금지되자 자체 웹사이트인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만들어 우익 인플루언서들을 초빙하고, 지지자들과 소통을 이어갔다.

NYT는 “1892년 그로버 클리블랜드 이후 처음으로 공화당의 (대선 주자) 지명을 받은 전직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이는 트럼프는 자신의 특이한 지위를 이용해 크고 작은 방법으로 대선 과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고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