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부채로 몸집 불리기…정부 규제로 유동성 악화
2021년 9월 달러 채권 이자 결제 실패로 디폴트 사태
홍콩 법원 청산 결정에도 본토 법원 결정 ‘미지수’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부채만 443조원에 달하는 중국 2위 부동산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이 홍콩 법원으로부터 청산 명령을 받으면서 27년 역사가 허망하게 끝날 위기에 처했다. 헝다는 중국의 주요 부동산 업체 가운데 처음인 2021년 말 역외 채권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지며 중국 부동산 위기의 진앙으로 떠올랐다. 홍콩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이른바 ‘대마불사(大馬不死·덩치 큰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의 믿음이 깨졌다는 시각이 나오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중국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홍콩 법원의 헝다 청산 명령은 2022년 외화 표시 채권 채권자인 탑샤인글로벌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홍콩 고등법원에 제기해 이뤄졌다. 탑샤인글로벌은 헝다가 8억6250만홍콩달러(약 1468억원) 채무를 갚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홍콩 법원은 헝다그룹이 2년 넘게 채권 상환 및 구조조정 계획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청산인으로 구조조정 컨설팅 회사 알바레즈&마샬을 지명했다. 미국 리먼 브러더스의 청산 등을 집행한 곳이다.
청산 명령에 따라 청산인이 회사의 자산을 매각해 부채 상환을 진행한다. 헝다의 총부채는 2조3900억위안(약 443조원)에 달한다. 청산인은 해외 채권자에게 새로운 부채구조조정 계획을 제안하거나 이사들의 위법행위에 대해 홍콩 검찰에 회부할 수 있다.
쉬자인(徐家印) 회장이 1997년 광둥성에서 설립한 헝다는 부동산으로 사업을 시작해 금융, 헬스케어, 여행, 스포츠, 전기차 사업을 아우르는 재벌 기업으로까지 성장했다.
부동산 재벌인 쉬 회장은 2017년 기준 보유재산 420억달러(약 57조원)로 아시아 부자 2위까지 올랐다.
헝다그룹은 대출을 받아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지은 뒤 선분양해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사업을 운영해 왔다. 중국 경제 급성장과 도래한 부동산 붐에 힘입어 헝다는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280개 도시에 900개에 달하는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직원만 20만명에 달하며 한때 중국 2위 부동산 개발업체로 성장했다.
‘빚’은 헝다 그룹을 띄우기도 했지만 침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21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집값이 급등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부동산 기업들의 대출을 규제하면서 헝다그룹 역시 대출이 연장되지 않는 등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이다.
2021년 9월 처음으로 달러 표시 채권 이자 결제에 실패한 헝다그룹은 결국 12월에 디폴트에 빠졌다. 헝다그룹의 아파트를 ‘선분양’ 받은 구매자들은 아파트는 받지 못한 채 부채를 떠안게 됐다.
헝다그룹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해외 부채를 구조조정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지난해 8월 맨해튼 연방 파산 법원에 파산보호법 15조에 따른 파산 보호를 요청해야 했다.
헝다그룹의 청산이 다른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줄도산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은 더 큰 걱정거리다. 헝다에 이어 매출 기준 업계 1위인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도 지난해 디폴트 위기에 처했다. 위안양그룹(遠洋·시노오션), 완다(萬達) 등 다른 부동산 업체들도 디폴트 위기에 놓였거나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게다가 이들 기업에 돈을 빌려준 자산 관리 업체 중즈그룹 등 금융권까지 위기가 번지는 상황이다.
싱가포르 리서치업체 크레디트사이츠의 니콜라스 천 애널리스트는 로이터에 “어려움을 겪고 이는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경우 구조조정 방향은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전반적인 시장 정서에는 의심할 바 없이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이번 청산 결정이 중국 부동산 시장의 투자 심리를 더욱 악화시켜 주택가격을 끌어내릴 경우 막대한 레버리지에 의존해 온 부동산 업체의 유동성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지난 1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연간 부동산 개발 투자는 9.6%하락해 여전히 회복될 조짐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다.
청산 명령의 여파는 당장 증시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날 홍콩 증시에서 헝다 그룹의 주식은 21% 폭락했다. 헝다 그룹의 주식과 자회사인 차이나 에버그란데 뉴에너지 차량 그룹 주식은 이날 거래가 정지됐다. 헝다 그룹의 시가 총액은 현재 2억7500만달러(3670억원)로 최고치 대비 99% 폭락한 상태다.
다만 홍콩 법원이 청산 명령을 내렸다고 해도 해외 채권자들이 헝다 그룹의 자산을 매각해 자기 몫을 챙겨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헝다그룹이 법원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420억달러 규모의 헝다 그룹 자산 중 90% 이상이 이번 명령이 내려진 홍콩이 아닌 중국 본토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산 압류 여부는 본토 법원이 홍콩 법원의 청산 명령을 받아들일지에 달린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당국이 과거 유사한 사례에서 채권자의 이익보다 완료되지 못한 부동산 프로젝트의 완공과 계약자에 대한 상환을 우선시해 왔다는 점에서 본토 법원이 청산 명령을 내릴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브록 실버스 카이위안 캐피털 전무 이사는 블룸버그에 “청산 명령은 헝다 그룹의 역내(중국 본토) 운영이나 자산에 미치는 즉각적인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며 “청산인이 역외(해외)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 권한은 역내에선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헤지펀드 및 사모펀드 자산 3조 달러 이상을 감독하는 대체투자관리협회의 커 셩리 아시아태평양 공동대표는 “국제 투자자들은 본토 법원이 홍콩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지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며 “이는 홍콩이 중국에서 법적 판결을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관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