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파 “팔 주민 몰아내고 가자지구 정착촌 건설”
베니 간츠 야당대표, 극우파와 충돌 후 전시 내각 탈퇴 시사
WSJ “인기 떨어진 네타냐후, 극우파 없이 집권 연장 불가”
전문가들 “국제 여론 악화로 전략적 손실 입게 될 것”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를 해체하기 위한 전투가 길어지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전시 내각 내분이 심화되는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는 집권 연장을 위해 극우파들에게 더욱 의존하고 이들의 무리한 요구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중동을 순방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7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을 다시 건설해야 한다는 이스라엘 극우파 장관들의 발언에 대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주도하는 가자지구의 미래를 확보하기 더 어렵게 만든다”며 “선동적이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앞서 초국가주의 종교 정당 시온주의당을 이끄는 베잘렐 스몰트리히 재무장관은 “가자지구 주민들을 난민으로 흡수하는 데 동의할 국가들에 이주시키고 2005년 일방적으로 철거한 유대인 정착촌을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의 오츠마 예후디트를 이끄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 역시 “이주 장려가 가자지구 갈등을 해결할 올바른 방법”이라며 정착촌 재건을 요구했다.
이에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주민들을 이스라엘인으로 대체할 생각이 없다”며 “이스라엘의 정책은 안보 강화”라고 해명했다.
유대인 정착촌 재건은 국제사회 뿐 아니라 이스라엘 국민들 사이에서도 비현실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IDI)의 지난해 11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정착촌 재건을 지지하는 이스라엘 국민은 약 25%에 불과하다. 반면 응답자 64%는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손을 떼거나 일정 수준의 보안 통제만 할 것을 선호했다.
IDI의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민 중 전쟁 이후 지도자로 네타냐후 총리를 지지한 응답자는 15%에 불과했다. 그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전쟁 내각의 파트너이자 전 국방장관인 중도 우파 베니간츠 국민통합당 대표를 지지하는 응답은 23%로 더 많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금 당장 선거를 치른다면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은 크네세트(의회) 의석의 3분의 1을 잃고 국민통합당에 정권을 내줄 상황”이라며 “극우파를 잡지 못한다면 네타냐후 총리가 장기적으로 집권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우파에게 정치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가 이들의 돌출 발언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극도로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극우파의 언행이 이스라엘 전시 내각의 구심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일 간츠 전 국방장관은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 “통합과 정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전시 내각 이탈 가능성을 언급했다.
간츠 전 장관의 경고는 전날 열린 안보 관련 내각 회의에서 벌어진 극우파 장관들과의 충돌 때문이다. 극우파 장관들은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을 초래한 이스라엘 군의 실수를 조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거세게 비판했다. 일부 국방부 관리들은 그들의 행동에 항의하기 위해 자리를 뜨기도 했다. 결국 회의는 3시간 만에 중단됐다.
간츠 전 장관은 이러한 혼란에 네타냐후 총리가 책임이 있다면서 극우파 장관들의 행동에 대해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참사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참모총장이 전투를 이어나가기 위한 교훈을 이끌어 낼 팀을 꾸리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며 할레비 참모총장에 대해서도 옹호했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역시 할레비 참모총장에 대해 지지의사를 밝히고 자신의 당과 결별했다.
그러나 벤 그비르 장관 등 극우파들은 간츠 전 장관이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가자지구를 점령하도록 하고 있다며 다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극우파들의 언행이 국제사회의 이스라엘 지지 여론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가이스 알 오마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만들 것이라며 “이것이 심지어 행정부 내 갈등으로 표출된다면 전략적 손실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