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가파른 금리인상 행진의 결과로 전세계 부동산 시장의 한파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에 손발이 묶인 주택 구매자들의 금융 부담이 급증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위기는 소비지출 감소에 이어 잠재적인 세계의 경제마저 위협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을 비롯해 한국과 뉴질랜드, 캐나다, 홍콩 등 전세계 각국의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고 전했다. 저금리시대에 활발한 부동산 거래와 이어진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각종 부동산 투자 수익을 누렸던 ‘황금기’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마크 잔디 무디스애널리틱스 수석 경제학자는 “주택의 황금기는 지났다”면서 “금융 위기로 주택을 산 이들은 많은 이득을 봤겠지만, 앞으로 10년은 더욱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 한파는 고금리·고물가에도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왔던 미국에서도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가장 보편화된 미국의 30년 만기 모기지금리는 지난 2021년 초 최저치인 2.65%%에서 현재 7%대 중반까지 상승했다.
이처럼 높아진 모기지 금리는 수요와 공급 양측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주택 시장의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주택 구매비용 상승으로 구입을 꺼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동시에 저금리 혜택을 포기못한 기존 주택구입자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으면서 공급까지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 줄어든 주택 공급이 가격 하락을 방어하고는 있지만, 거래 자체는 약 13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실제 이날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존주택 판매(계절 조정치)는 전월대비 4.1% 급감한 연율 379만채에 그치면서 2010년 8월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기존주택의 중간 가격은 넉달 연속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로렌스 윤 NAR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잠정적인 주택 매수자들은 주택 재고 문제와 높은 모기지 금리로 인해 또다시 어려운 한 달을 보냈다”며 “단가가 높은 주택 시장 부문에서는 일부 할인이 일어나고 있지만, 생애 첫 주택이나 중간 가격의 주택에는 매수자 간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주택시장 한파가 이제 ‘시작’ 단계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경색된 시장이 빠른 시일 내에 제자리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시장은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가 향후 10년간 평균 약 5.5%의 높은 유지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벤저민 키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이 빙하기의 초기 단계에 있으며 조만간 해빙될 가능성은 낮다”며 “이 이상현상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주택 구매자들은 천정부지로 오른 모기지 상환액을 감당하기 위해 지출을 줄이며 ‘고금리’ 시대를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특히나 지난 2021년 연간 30%에 달하는 가파른 부동산 가격 급등을 경험한 뉴질랜드의 후폭풍이 거세다.
뉴질랜드의 모기지 금리는 대부분 3년 미만으로 고정돼 있는데, 2021년 10월 이후 현재까지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5.25%의 금리 인상을 단행한 상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모기지 상환 비용이 급등하면서 뉴질랜드 대출자의 가처분 소득 중 이자 비용 비중은 지난 2021년 9%에서 내년 약 20%까지 상승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높은 인플레이션과 씨름하고 있는 영국은 최근 금리 상승이 이미 많은 이들이 후불 신용카드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만 영국에서 백만명이 넘는 주택 소유자들이 재융자를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캐나다의 경우 국고채 투자 수익이 5%인데 반해 주택 소유에 따른 수익이 3.9%에 불과해 부동산 투자 매력도가 감소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금리 인상으로 전세의 매력이 떨어지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채무불이행 위험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는 “전세보증금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시점에 체결된 계약을 감안하면, 전세 임대인들의 채무 불이행 위험은 내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싼 임대가격으로 악명이 높은 금리와 높은 홍콩은 중국의 경기 둔화와 인구 이탈 등의 추가 영향으로 기존 주택 가격이 6년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진 상태다.
니라즈 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경제학자는 “기록적 저금리와 공급부족에 주택시장은 지난 20년간 파티를 열었다”면서 “앞으로는 엄청나게 절제된 10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