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들, 화석연료 퇴출 움직임에 “부당하다”
개도국·선진국 간 이해관계 차이도 뚜렷
‘최대 탄소배출국’ 바이든·시진핑 불참…관심 하락 우려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오는 30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8)를 앞두고 벌써부터 기후위기 대응을 둘러싼 당사국들의 이해관계 충돌이 가시화되고 있다. 주최국인 UAE가 일부 참가국을 대상으로 화석연료 판매로비를 계획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최대 탄소배출국 수장들마저 불참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COP28이 시작도 전에 삐걱대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200개국 한자리…‘석유’ 포기못한 의장국
27일 BBC는 비영리단체인 기후보호센터와 공동 입수한 유출 문서를 인용해 UAE가 이번 COP28 회의에서 외국 정부에 석유·가스 거래를 제안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문서에는 올해 COP28 의장이자 아부다비 국영 석유회사 아드녹의 술탄 알 자베르 최고경영자(CEO)가 중국과 브라질, 독일, 이집트 등 15개국과 화석연료 거래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미 CNBC도 “UAE가 가장 크고 중요한 연례 기후회의에서 석유와 가스 로비를 할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그러자 COP28 측은 해당 보도에 언급된 문서는 COP28 회의에서 사용되지 않았다면서 “검증되지 않은 문서가 보도된 것이 매우 실망스럽다”고 대응했다.
내달 12일까지 약 2주간 열리는 이번 COP28는 기후변화 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전세계 약 200개국이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세계 지도자와 정부 관계자 약 7만명이 대표단과 함께 두바이를 찾는다.
레이첼 클레투스 참여과학자모임 기후 프로그램 책임자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한 곳에 모이는 매우 진지하면서도 우울한 순간”이라면서 “약간의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화석연료 퇴출 노력 불편한 산유국·개도국…“이율배반적이다”
하지만 COP28은 UAE의 ‘화석연료 로비’ 계획과 더불어 화석연료 퇴출을 둘러싼 산유국 및 개도국, 그리고 선진국 간의 이해관계 차이로 시작 전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 이날 UAE 로비 관련 보도가 나오자 앤 해리슨 국제 엠네스티 기후고문은 자베르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그가 COP28 회의를 기회로 자신의 사업적 이익을 증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번 COP28이 화석연료 업계의 전방위적 로비로 인해 ‘포섭’됐다는 일각의 우려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자베르 의장은 공개 석상에서 화석 연료의 완전한 퇴출이 아닌 ‘단계적 감축’을 주장하면서, 화석 연료가 가까운 미래에도 계속해서 에너지믹스의 일부가 돼야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유럽의회가 최근 2025년까지 전세계 화석연료 보조금 지급 종료를 COP28 공식 의제로 추진키로 결정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더불어 산유국들은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해 화석연료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에 노골적인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 하이탐 알 가이스 석유수출기구(OPEC) 사무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화석연료 산업이 기후 위기에 배후에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알 가이스 사무총장 역시 COP28 회의 참석이 예정돼 있다.
소위 ‘글로벌 노스’라 불리는 북반구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화석연료 퇴출 움직임이 불편한 것은 개발도상국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성장을 이룬 선진국들의 탈 화석연료 주장은 이율 배반적이라는 것이 개도국들의 주장이다.
정치매체 포린폴리시는 “화석연료는 특히 개도국과 전기를 사용하기 어려운 7억7000만명의 인구, 그리고 깨끗한 연료에 접근하기 힘든 25억명이 겪는 에너지 빈곤에 대해 저렴한 솔루션을 제공한다”면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는 깨끗한 해법이지만, 인프라 자금 조달 측면에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바이든·시진핑 총회 불참…관심 저하 우려
여기에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도 이번 기후회의에 불참키로 하면서, COP28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떨어졌다는 방증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등 복잡한 국제 정세,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의 목표 달성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각국 정상들의 부담감 등이 올해 기후회의에 무게를 떨어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날 뉴욕타임스(NYT)는 백악관 관리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COP28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불참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으나, 바이든은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사이에서 이뤄진 인질 협상 등으로 인해 업무 과중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후 변화를 중요 정책 현안으로 제시해온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21년과 2022년 두 해 연속 총회에 참석했다.
미국에서는 존 케리 기후문제 특사와 그의 팀이 이번 회의에 참석하고, 중국에서는 셰전화 기후변화 특별대표가 참석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