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으로 미국 이미 상당 국력 소진
하마스 공격,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 종지부 선언
다극화체제 전환…국제질서 회복도 다자간 작업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0개월째 치러지는 와중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면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을 지원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상당한 전력이 소진된 가운데 이스라엘 전쟁까지 터지면서 미국의 외교력은 이미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만약 이 틈을 탄 중국이 대만해협에서 ‘제3의 전선’을 도발할 경우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11일(현지시간) CNN과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하마스의 지난 7일 습격이 수십년간 지속된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지배에 의해 세계의 평화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에 완벽한 종지부를 찍었다고 분석했다.
CNN은 “만약 세번째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 곳은 대만해협일 것”이라면서 “불길하게도 중국이 대만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미국이 너무 자주 위기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타깝게도 국가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기에 미국이 3개의 전선 모두에 군사적으로 적극 참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국의 국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상당히 소진됐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2월 전쟁이 터진 이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1100억달러(147조3560억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우크라이나가 겨울이 오기 전에 막바지 반격에 총력을 쏟으면서 하루 6000발을 쏘던 포탄을 최근 1만발로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있는 순항미사일과 정교한 첨단 무기 및 드론의 생산비용도 갈수록 높아지면서 지원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까지 확대되면 미국의 부담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군 투입에는 선을 그었지만 인지적 동맹인 이스라엘이 엮인 이 전쟁에 미국은 어떤식으로든 개입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2018~2028년 380억달러(약 51조원)의 군사 지원을 약속했고, 미 의회는 올해 미-이스라엘 공동 국방 프로그램에 약 5억2000만달러(6964억원) 예산 투입을 승인했다. 이 가운데 데 상당 부분이 요격시스템인 ‘아이언 돔’에 들어갔는데, 이번 하마스 공격에 뚫리면서 이를 보강하는데 추가 비용을 투입해야할 처지다.
CNN은 “미국이 동지중해에 항모를 파견해 이란에게 경고를 보낸 것은 추가 확전은 반드시 피하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란이 간접적으로라도 참전하는 순간 미국의 부담은 더욱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불 붙을 것 같은 대만해협 상황은 미국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은 최근 대만해협 안팎에서 무력시위를 늘리고 있다.
미국은 대만에게 무조건적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미국의 군사 비축량이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 러시아, 이란과 같은 수정주의 강대국들이 역내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며 동시에 세계 질서를 흔들자 미국은 이를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독재 국가간의 파트너십이 더욱 깊어지는 점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세계 정치 지도자들은 공격적 행동의 이점이 비용보다 더 크다고 믿고 있다”며 “이런 지도자들은 미국보다 자신들의 역내 영향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세계는 ‘다극화 체제’라는 새로운 질서로 전환중이며, 국제질서를 다잡고 붕괴를 방지하는 것 또한 더이상 미국의 손이 아닌 다자간의 작업이 됐다고 NYT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