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이스라엘 행위 자위범위 넘어서”…중립 이탈
전문가들 “中, 아랍국가 호의 얻어 장기적 영향확대 노려”
美 이·하마스 분쟁 개입 ↑…中 단기적 존재감 높이기 어려워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지난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분쟁에 중립적 어조를 유지해 온 중국이 점차 친(親) 팔레스타인 행보를 뚜렷히 하고 있다.
전통적인 역내 안보파트너로서 미국을 대신할 소위 ‘대체 파트너’를 찾는 중동 국가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번 분쟁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등 아랍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더욱 다짐으로써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5일(현지시간) 외신들은 중국이 최근 잇따른 외교적 행보를 통해 중립을 주장하면서도 사실상 팔레스타인편에 섰다는 분석을 내놨다.
미 정치전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중국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편을 정했다”면서 “오늘날 중국은 아랍국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분쟁이 중국의 친팔레스타인 성향을 전면에 내세웠다”고 평가했다.
실제 중국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 직후인 지난 8일 “민간인 폭력과 공격을 규탄한다”며 ‘두 국가 방안’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았다면서 하마스 공격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삼갔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직접 겨눈 비판도 자제해왔다. 당시 하마스에 대한 더욱 강한 비판을 기대했던 이스라엘은 실망스러운 반응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주말부터 중국은 중립적 입장에서 벗어나 점차 팔레스타인에 힘을 싣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전날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장관과 전화통화에서 “이스라엘의 행위는 자위 범위를 이미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이튿날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과 통화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이슬람 국가들이 단합하고 협조하는 것을 지지하고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지지한다”면서 중국이 팔레스타인 민족 권리 수호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번 분쟁이 중국의 입장에서는 중동 내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려는 야망의 시험대이며, 중국이 그 중에서도 아랍 국가들의 편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중국은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국가들의 신흥국 그룹인 브릭스(BRICS) 편입을 이끌고, 사우디와 이란 간 국교 정상화를 이끌어내는 등 역내 정치·외교적 존재감을 키워왔다.
다만 최근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중동 내 지정학적 위기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나선만큼, 중국이 당장 ‘평화중재자’로 나서기보다 장기적인 영향력 확대를 노리며 개입에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중국은 세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이 팔레스타인에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멀리보면 이를 통해 중국은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동조하는 국가들의 호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인훙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역시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아랍국가와 중국 간 장기적 관계 정립에 주목하며 “적어도 전쟁 중 한동안은 중국의 중동정책이 마비된 상태이며, 미국이 관여하는 가운데 중국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마이클 싱 전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담당 선임국장은 “중국은 세계 어딘가 분쟁이 생길 때 본질적으로는 그것을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기회를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중국이 이스라엘을 소외시킴으로써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고려해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는 것을 주저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스라엘은 중국의 주요 기술분야 교역국으로, 중국은 이스라엘로부터 연간 10억달러 이상의 반도체를 수입하고 있다. 여기에 폴리티코는 중국이 친팔레스타인 노선을 분명히할 경우, 표면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함으로써 평화중재자로서 역할을 꾀했던 중국 정부의 노력도 무산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투비아 게링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의 최근 행보를 “친팔레스타인적 중립”이라고 설명하면서 “중국이 스스로 주장하는 책임 있는 강대국이 되는 대신 지정학적 이익을 위해 이 갈등을 악용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