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세계적 수준의 첨단 군사력을 자랑하던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재래식 무기에 속절없이 당하면서 그간 군사전략을 잘못 운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하마스는 지난 7일 새벽 불도저를 동원해 약 6m 높이의 이스라엘 ‘스마트 펜스’를 한순간에 무너트렸다. 길이 65km의 ‘스마트 펜스’는 이스라엘 정부가 11억달러를 들여 3년 반에 걸쳐 구축했다. 최첨단 레이더 시스템과 정밀 센서 등을 촘촘하게 설치해 ‘철의 벽’이라 불렸지만, 정작 굉음을 내고 돌진한 불도저엔 무방비로 당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불도저로 펜스를 밀어버리는 상황조차 모니터로 볼 수 없었다.
그런가하면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나다던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위협은 심각하게 여긴데 반해 하마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앞서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스라엘 현지 매체 하레츠를 인용, 이스라엘 정보 당국이 지난주 “하마스가 본격적인 전쟁을 피하고 싶어 한다”며 전면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내렸다고 보도했다.
하레츠는 지난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개최한 안보관련 포럼에서 국가안보장관을 비롯한 각료들은 없었으며,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란의 위협만 강조했을 뿐 가자지구 위협은 걱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하마스는 로켓과 무인기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일시에 공격을 가했고, 이스라엘군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하마스 무장대원들은 이스라엘 군인과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았다.
이스라엘에 본부를 둔 국제대테러연구소의 아비 예거 연구원은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스라엘 군은 잘못된 전쟁을 준비해왔다”고 비판했다.
WSJ은 이스라엘이 지난 20년 간 첨단 항공전력과 정보시스템 전환을 가속화했다고 설명했다.
인접한 이집트와 요르단 등 아랍국가들과의 지상전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판단에 따라 무장 세력의 테러가 주요 위협요소라고 본 것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정보, 사이버 역량 증진에 집중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2011년 배치된 ‘아이언 돔’이라는 첨단 미사일 방어 체계가 그 상징이자 결과물이다.
반면 전투 병력과 예비군은 줄였다. 예거 연구원은 2015년 이스라엘군은 부사관 규모를 10% 줄었으며 남성의 복무 기간을 4개월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의 코비 마이클 연구원은 “우리는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약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는 사이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재래식 군사작전에 더 몰두했다. 하마스는 이미 10년 넘게 가자지구에 지하 지휘통제센터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기습에 1000명이 넘는 무장 대원이 일사분란하게 공격에 나서면서 그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을 입증했다.
특히 무려 5000발의 로켓을 동시다발적으로 발사해 ‘현존하는 방어 시스템 중 최고’라는 아이언돔을 무력화한 것은 이스라엘의 허를 제대로 찌른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5월 아이언돔 요격률이 95.6%라고 자랑했지만 이번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의 마크 헤커 연구원은 “하마스는 이스라엘 방어 시스템 취약점을 노리고 동시에 많은 미사일을 발사했다”며 “(방어 능력이) 포화 상태에 이른 것이 아이언돔 실패의 핵심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과 정보 당국은 일단 가자지구 내 하마스와 전투에 집중할 때라면서 전략 실패는 차후 따져보겠단 입장이다.
하지만 중장기적 군사 전략 오판과 정보 실패, 초기 대응 부실 등이 이번 하마스 공격으로 도마 위에 오르면서 이스라엘 군에 대한 비판 여론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 분쟁 전문가인 대니얼 레비 미국·중동프로젝트(USMEP) 의장은 “이스라엘은 고도의 첨단 기술과 무기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보 기관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번 공격으로) 전략적 충격을 받았다”며 “이스라엘은 더이상 국민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으며 (방어 능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