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 민간인 피해 우려로 하마스 축출 어려워
팔 주민 인종청소 가능성…외교적 비난 가능성
팔 자치정부 낮은 인기로 정치적 대안도 부재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이 보복을 선언하며 하마스의 근거지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 봉쇄와 지상작전을 천명했다. 그러나 하마스가 구축한 견고한 방어망과 민간인 피해 가능성, 아랍권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여론 악화 가능성을 고려하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정치 매체 악시오스의 보도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8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우리는 가자지구에 진입해야 한다”면서 지상작전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나약함을 보여줄 수 없는 만큼 무력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남부군사령부를 방문해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 봉쇄를 지시했다”면서 “전기도, 식량도, 연료도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이 닫힐 것”이라며 무력 대응 의지를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력 차이가 큰 만큼 전면적인 지상전이 개시될 경우 이스라엘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하마스의 완전한 축출과 항구적 평화 구축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 못하면서, 이스라엘이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998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따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의 분리를 의미하는 ‘두 국가 원칙’이 관철되면서 가자지구에선 2006년 선거가 치러졌다. 하마스는 선거 결과 다수의 지지를 얻었지만 선거 결과가 인정되지 않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와 관계를 끊고 가자 지구를 장악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을 포기했지만 육지와 공중, 해상에서의 봉쇄를 유지해왔다.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는 이집트 시나이반도나 이스라엘 남부 사막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땅굴을 다수 파고 이스라엘의 감시를 피해왔다. 가자지구 주민에 대해 의료 구호활동은 물론 교육 등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민심도 철저히 장악했다. 이스라엘 군이 가자지구에 진입하더라도 쉽게 하마스를 축출하기 어려운 이유다.
외교 전문 매체 포린어페어스(FA)는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심문하고 하마스 관료를 체포함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한 단기적인 위협을 감소시킬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 지역의 빽빽한 도시 지형은 이스라엘 지상군에게 심각한 장애물이 되며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4년 이스라엘이 보호선 유지를 위해 가자지구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2000여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군인 66명과 이스라엘 민간인 6명도 사망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150여명의 인질을 한명씩 처형하겠다는 위협도 가한 상태다.
반대로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인에 대한 의도적인 인종 청소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스라엘 집권 여당인 리쿠드당 소속인 이스라엘 크네세트 의원은 “지금의 목표는 단 하나, 1948년의 나크바를 덮을 또다른 나크바”라고 울부짖었다. 나크바는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수십만명의 팔레스타인 인이 난민 신분이 된 대규모 인종 청소를 의미한다.
미카엘 밀슈타인 텔아비브대학교 다얀센터 소장은 “미국이 다른 행위자가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군 함정을 동지중해로 옮기고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한 것은 이스라엘에 더 큰 잔혹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한 것으로 해석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학살행위를 자행할 경우 아랍권과의 외교적 갈등은 빠르게 증폭될 전망이다. 무함마스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의 전화통화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양호한 삶을 누릴 적법한 권리, 희망과 포부,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를 성취할 권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랍 연맹은 오는 11일 가자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외무 장관 회담을 열고 아랍권 차원의 대응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성공적으로 축출한다고 하더라도 가자 지구를 영토로 재편입할 가능성은 적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가자지구를 정복하거나 당분간 점령할 가능성은 있지만 사상자와 상당한 경제적 자원 및, 이스라엘의 국제적 위상의 잠재적 손상을 포함한 전략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하마스를 대신해 가자지구를 도맡아 통치할 대안 세력도 없다는 점이다. FA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하마스를 혐오하고 요르단간 서안에서 하마스를 잔인하게 억압했지만 만연한 부패와 약한 리더십, 이스라엘과의 협력 등으로 정치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하면 어려운 경제상황과 적대적인 주민들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갇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