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 인터뷰
2023년 젊은 건축가상 수상
공간 배치·비율 통한 공간감 구현
금속·벽돌 등 재료 고유 특성 집중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제주 대지에 지어진 외딴 붉은 콘크리트 집. 반듯한 벽들을 겹쳐 지은 이 곳은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가 지은 독채 건물 ‘수리움’이다. 약 116㎡ 면적의 필지 위 단층 건물이지만, 각 공간 용도에 따라 바닥 높낮이와 빛이 들어오는 양이 다르다. 직선으로 이뤄진 간결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됐다.
‘2023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는 장식은 최소화했지만 단조롭지 않은 공간, 재료 고유의 특성을 살린 건축을 지향한다. 심사위원들 또한 재료 본연의 성질, 사물과 공간의 관계 등 건축 본질을 집요하게 탐색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지난달 27일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수 건축사(대표 소장)는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미지적인 것에 즉각 반응하고, 인위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경계하고 싶었다”며 “(공간 내) 질서나 배열, 관계에 중점을 두며 취약성이 있더라도 포장하기보다는 드러내고 싶다”고 털어놨다.
효용성만 따지면 느낄 수 없는 낭만도 담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어릴 때 처마 밑에 앉아 빗소리를 듣거나, 아주 작은 공간에 숨어 놀 때 느끼는 아늑한 공간감이 있다”며 “그런 것들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생각은 작업물에 고스란히 담겼다.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의 첫 프로젝트였던 독채 ‘나지요네’는 언덕 아래 곶자왈이 펼쳐지는 대지, 주변의 산 등 제주의 천혜 경관에 둘러싸여 있다. 어떤 형태든 자연만 못하단 생각에, 지붕 하나 없이 최소한의 형태로 완성했다. 밝은 회색 콘크리트 벽으로 이뤄진 공간 내부에는 중정이 위치했다. 내부 공간은 한라산, 곶자왈, 산방산, 돌담 등 주변 요소와 연결되는 독립된 개구부가 있다. 공간을 배치하는 형식, 각 공간의 비율을 고려해 공간적 변화와 주변 자연과의 연결성을 최대한 살렸다.
이 집만의 공간감을 위한 ‘무용함의 가치’에도 공들였다. 두터운 날개벽과 툇마루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아늑한 공간감을 준다는 설명이다. 김 건축사는 “각 모듈 안에서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의 분위기는 무용한 것에서 나온다”며 “가령 건물 날개벽은 이 정도 두꺼워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얇고 낮은 벽보다는 두툼한 벽을 지나갈 때, 마치 성곽으로 들어가는 듯 아늑하고 위로받는 게 있다”고 말했다. 코너 벽은 없애 내부 공간을 시각적으로 확장했다. 중정은 묵직하고 투박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두꺼운 툇마루 두께 등을 적용했고, 뻥 뚫린 지붕과 통창 등으로 내외부 연결성을 강조했다.
또 다른 제주도 독채 건축물 수리움은 하나의 오브제처럼 툭툭 쌓아 올린 듯한 컬러 콘크리트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김 건축사는 “괜한 장식적 요소를 취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며 “제시된 공간에 적절한 배치를 통한 공간감으로 분위기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식은 절제됐지만 건축을 구성하는 재료는 하나하나 조화를 고려했다. 그는 “제주에 많이 있는 붉은 송이석으로 건물 내 바닥을 채우고, 비슷한 색상의 콘크리트를 조색해 만들었다”며 “콘크리트 벽 하부는 치핑(chipping·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표면을 거칠게 마무리하는 것)해 거친 바닥 조각이 올라오며 매끈하게 되는 것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것은 내부 공간 바닥의 단차가 무려 6단계라는 것이다. 김 건축사는 “어떻게 보면 불편할 수 있지만, 다 연결돼 흘러가는 듯한 공간 연결을 꾀했다”며 “변화하는 공간마다 단차가 있어, 연결되면서도 영역성이 드러나는 건축의 특성으로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단차와 더불어 공간마다 빛의 양도 달라져, 일종의 문지방효과가 극대화된다. 어둑한 작은 침실, 위에서부터 빛이 가득 쏟아지는 밝은 주방 등 공간 분위기가 다채롭게 꾸며지는 것이다.
주거용이 아닌 상업용 건축물에서는 고민의 지점이 달라진다. 일종의 ‘쇼윈도’인 건축물 외벽(파사드)의 지속성이 그것. 압구정에 있는 상업용 건축물 ‘알로하 도산’은 임대형 건물이다 보니 내부 디자인보다는 외부를 통한 디자인이 중점이 됐다. 보통 번화한 상업지구 보행가로의 건물은 도시 구조, 사회, 문화 등의 변화에 맞춰 빠른 변화가 요구된다. 김 소장은 건축물의 지속성에 대해 근원적인 고민을 하며, 건축물의 구조적인 것(공간)과 비구조적인 것(외벽)을 구분키로 했다.
구조에서 자유로운 입면을 통해 변화에 대응하되, 지속성을 갖추기 위해 빛과 그림자를 활용했다. 김 건축사는 “상업가로의 건축물은 많은 경우 외부 표피를 다루는 게 (빠르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점점 값싸고 쉽게 설치되고 얇게 만들어지는 게 많다”며 “구조 자체는 라멘구조로 향후 외부 표피를 철거해도 문제없는 형태지만, 그럼에도 쉽게 변하지 않도록 좀 더 두께감 있는 표피에 빛과 그림자를 통한 변화를 줄 수 있게 했다”고 했다. 입면에서 만드는 각도는 층마다 변화해, 빛이 들었을 때 그림자 효과도 각각 다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트렌드에 금방 뜯겨내질 외관이 아니라, 오랜 시간 존재감을 지키기 위한 의지도 담겼다.
한남동에 위치한 사무실 건물 ‘사라 한남’은 재료 특성에 집중한 공간이다. 이곳은 다양한 근생시설, 독립된 공방과 사무소들이 들어선 조용한 동네에 위치했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공유 오피스는 주춤해졌고, 독립된 소규모 개인 공간을 원하는 수요가 늘었다. 사라 한남은 그런 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기존의 통합된 사무공간이 아니라, 작지만 독립된 공간들로 나눴다. 주거지역에 들어선 조용한 사무실은 금속, 콘크리트, 유리 등 딱 3개의 재료로만 전체적인 디자인을 한 게 특징이다. 아무런 의도를 담지 않은 ‘무색무취’의 재료를 선택했다. 김 건축사는 “각 재료가 가진 물성을 최대한 잘 드러나게 했다”며 “콘크리트의 러프한 느낌과 더불어 금속은 섬세하고 날렵한 선의 느낌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둔촌동에 지은 다가구 주택도 ‘벽돌’이란 한 가지 재료를 통해 단조롭지 않은 디자인을 선보였다. 김 건축사는 “과거엔 구조적으로만 쓰이던 벽돌이 어느 순간 치장의 성격으로 넘어왔다”며 “벽돌의 반을 잘라 거친 면을 밖으로 드러내는 등 단일한 벽돌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이런 거친 벽돌 면이 빛을 받았을 때는 매끈하지 않은 빛의 질감 느낌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재료의 숨겨진 특성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공간 또한 연결성을 갖추기 위해 고심했다. 그는 “복도를 중심으로 시선이 끊어지지 않고 창을 바라볼 수 있다”며 “창 너머 공간으로 각 공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건축사는 앞으로도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만의 생각을 담은 공간들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 “클라이언트들을 만나면 공간에서 어떤 체험과 생각을 할 수 있는지를 중요히 여긴다고 말한다. 건축 자체를 실용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국 사회는 그렇게 (실용성을 따져) 발전했지만, 그럼에도 좀 더 명상적이고 관망하는 태도로 공간을 바라보려 한다.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