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건축사무소 조윤희 대표 인터뷰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서울 광화문 옆길로 북악산을 향해 걷다 보면 골목길 한 켠에 4층짜리 주택 한 채가 서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평범한 듯 특별한 집 ‘청운광산’이다. 사방으로 난 크고 작은 창은 마치 변주곡처럼 건물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완만한 세모꼴 지붕은 건물을 단단하게 감싸 안아 안정감을 줬다. 옅은 흙빛 벽돌이 켜켜이 쌓인 외벽은 나무로 만든 따뜻한 집이라는 말을 대신하는 듯했다.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 들어서 있는 청운광산은 11명의 청년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다. 서울시의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으로 지어졌다. 주거난, 복지, 저렴한 가격 같은 키워드가 연결돼 언뜻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를 법도 한데 청운광산의 첫인상은 그렇지 않았다. 청운광산을 설계한 구보건축사무소 조윤희 대표는 일상의 공간에서 사람이 대접받는 느낌을 받으며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인지 청운광산은 그저 그런 네모반듯한 성냥갑 건물이 아니다.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전봇대집에서 만난 조 대표는 자신의 설계가 “평범하다”고 했다. “화려하거나 눈에 띄거나 독특하기보다는 원래 있었던 것 같이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설계를 많이 해요. 일상적인 건물에 설계 요소를 더했을 때 오는 기분 좋은 편안함이 구보건축의 매력이죠.”
조 대표의 말대로 청운광산도 튀지 않는다. 어느 주택가에 둬도 자연스럽게 녹아들 정도로 낯설지 않다. 그러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은 분명히 있다. 익숙함에서 오는 안정감이고 그 속에 스며든 새로움이 주는 신선함이다.
청운광산의 가장 큰 특징은 창이다. 주변의 근사한 풍경이라는 주어진 자원을 실내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끌고 들어왔다. 큰 창에 담긴 풍경 덕에 감각적이고 풍요로운 거주 환경이 조성됐다. 조 대표는 “사업성을 갖추기 위해선 꼭 11명을 수용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개별 거주공간의 물리적인 면적이 부족했다”며 “방마다 각기 다른 크기의 창을 통해 인왕산이나 무궁화공원 등 주변 풍경을 방 안으로 가져와 공간을 넓게 느끼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공동주택을 목구조 건축으로 구현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출발은 환경적으로 우수한 거주 공간을 청년에게 제공하려는 마음이었다. 청운광산은 나무와 콘크리트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구조로 지어졌는데 화장실이나 샤워실 같이 물을 쓰는 공간을 제외한 모든 생활공간은 나무 구조로 디자인했다.
“목구조의 집은 숨을 쉬어요. 공기가 내외부로 자연스럽게 오가며 환기가 되고 온도도 따뜻하죠. 저렴하게 공급되는 사회주택이 자칫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식될 수 있잖아요. 청년들에게 나무로 둘러싸인 양질의 환경에서 거주할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청운광산은 2020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특별상을 받았다.
조 대표는 일상의 건축이 사람을 위해야 한다고 믿는다. 건축사무소 이름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따온 것도 건축에서 사람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봤기 때문이다. 구보씨 같이 평범한 소시민에게 좋은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조 대표의 마음이 이름에서부터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우리네 도시공간은 때때로 굉장히 폭력적인데 이는 사람보다 개발이 우선시됐기 때문”이라며 “정성스럽게 만든 건물로부터 사람대접을 받으며 산다고 느끼게 만드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는 2021 젊은건축가상 수상 당시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통해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인식이 뛰어나다는 심사평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조 대표도 한때는 여느 건축학도가 그러하듯 화려한 건축물을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건축 일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실제 삶과의 괴리감을 느꼈고 일상 속 건축에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고 그는 회고했다.
“기념비적 건물이나 상징성을 담은 건물도 물론 필요하죠. 그렇지만 그 외의 건물을 대충 짓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해선 안 되잖아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자고 일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쉼을 갖는 일상의 공간을 더 좋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어쩌면 공공건축이 돌파구가 돼 그런 갈증이 해소됐던 것 같아요.”
조 대표는 2016년부터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건축물의 속성 자체가 공공적인 특성을 가진다”면서 “공공건축이든 민간건축이든 진행 프로세스에 차이가 있을 뿐 도시 공간에 어떻게 활력을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동일하다”고 했다.
조 대표는 설계에서 ‘낮은 천정고’를 자주 활용한다. 흔히 천정고를 높여 개방감을 주는 건축 방식을 선호하는 트렌드와는 정반대다. 그는 “높기만 하면 공간에 힘이 없다”면서 “높낮이를 잘 조율해 배치했을 때 높이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낮은 천정고를 추구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이었다. “크고 높고 웅장한 공간은 결코 사람에게 편안한 공간이 아니에요. 권위적이고 또 압도되기 마련이죠. 사람이 마음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아파트에도 좋은 주거 환경에 대한 고민이 담긴 설계를 적용해보고 싶다는 게 조 대표의 목표다. 그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결국 아파트인데 지금의 아파트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아파트 설계에선 건축가가 들어가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몇 가구가 들어가야 하고 시공비용은 얼마가 들어가야 하고 수익금은 얼마나 나와야 하는지가 중요해요. 사람이 살기 좋은 공간에 대한 고민은 없고 개발논리만 남아 있는 거죠.”
조 대표는 개발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우리 사회의 아파트 건축 방식을 ‘건드릴 수 없는 성’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그 공고한 성에 균열을 내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설계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