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신고 6분 만에 조선 현행범 체포
현장 도착시점 또 다른 피해자 노려
일촉즉발 상황…도망도 못 간 시민들
편집자주 “한국에서는…도망쳤다고 추적하기를 중단합니까?” 범죄부터 체포까지, 대한민국 경찰들의 끝나지 않는 ‘붙잡을 결심’을 소개합니다.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100m 멀리, 조선이 칼을 들고 시민에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당시엔 오히려 차분했는데 뒤늦게 무서움이 몰려왔습니다.”
31일 헤럴드경제와 만난 홍성진 서울 신림지구대 경장은 지난달 21일 조선(33)이 벌인 ‘신림동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체포 당시 상황에 대해 이같이 돌이켰다.
사람 붐비던 골목서 또 다른 피해자 노리던 조선
지구대에서 대기근무를 하던 홍 경장이 “누가 사람을 칼로 찌르고 도망간다”는 첫 신고를 받고 즉시 출동한 시각은 이날 오후 2시7분. 112신고 대응 체계상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출동해야 하는 ‘코드제로’였다.
신고 4분 만인 오후 2시11분, 신림역 인근 골목 초입에 선 홍 경장에게 5번째 피해자를 노리는 조선이 보였다. 현장엔 이미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태였다. 홍 경장은 “골목 안쪽으로 얼굴과 손에 피를 묻힌 피의자가 한 시민에 다가가고 있었고, 시민은 기다란 막대기를 휘두르며 대치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홍 경장을 보자 칼을 든 채 홍 경장을 향해 다가오던 조선은, 확성기로 투항을 명령하자 인근 스포츠센터 앞 계단에 앉아 칼을 버렸다. 이에 조선을 현행범으로 체포한 시각은 현장 도착으로부터 2분 만인 오후 2시13분. 당시 현장을 촬영한 시민 제보영상으로 잘 알려진 순간이다. 홍 경장은 “바로 피의자를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투항 직전까지는 피해자가 얼마든지 더 발생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며 “빨리 체포해야 한다는 생각에 방검복과 방검장갑조차 착용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늦게 무서움이 몰려왔다”고 털어놨다.
지구대서도 ‘횡설수설’ 조선…경찰에 “아버지냐” 묻기도
실제 현장 일대는 흉기난동이 벌어지고 있었음에도 유동인구로 매우 붐비는 상태였다. 홍 경장은 “사건이 발생한 골목 일대는 평소에도 시민 간 다툼이나 폭력 사건이 워낙 많아 시민이 어떤 상황인지 자각을 못해 도망조차 가지 못했던 상황이었다”고 했다.
체포 직후 조선의 모습은 입가에 게거품이 끼어 있는 등 극도의 흥분 상태였다는 게 홍 경장의 설명이다. 조선은 지구대에서의 1차 조사에서 ‘왜 범행을 저질렀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구치소 수감 시절을 이야기하며 “내 친구를 무시하는 놈들은 다 죽일 것”이라고 말하거나 관악경찰서 강력팀장이 지구대를 찾자 “아버지 되시냐”고 묻기도 했다.
흉악범죄 늘지만…현장서 적극 대응 어려운 경찰
체포 과정에서 조선에게 “칼 버리세요”라며 존댓말을 했다는 이유로 일었던 비판과 관련해 홍 경장은 “경찰 매뉴얼에 따른 대응이기도 하지만 개인적 의도도 있었다”며 “약에 취해 있거나 주취 상태라면 흥분할 가능성이 있기에 최대한 피의자를 자극하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조선은 실제로는 범행 당시 마약을 하거나 술에 취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피의자를 강하게 제압해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현장에서 이는 쉽지 않다. 최근 정부는 저위험 권총 투입을 늘리는 등 경찰의 물리력 사용을 권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홍 경장은 “어떤 경찰이든 소송에 휘말리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경찰 면책권을 확대하는 방향의 법령 개정이 없다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신림 일대에 연이어 발생한 흉악범죄로 치안 수요가 늘면서 홍 경장을 비롯한 일선 경찰들은 현재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홍 경장은 “치안 안정화를 위해 모든 경찰이 맨발로 뛰고 있다”며 “(시민의) 불안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저희를 믿고 일상생활을 해주시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