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우로 농산물 피해가 잇따르고 가축이 폐사하면서 최근 진정세를 보이던 밥상물가와 소비자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쟁 중에도 세계 최대 곡물생산국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가능케 했던 ‘흑해곡물수출협정’까지 종료되면서 곡물수입가도 다시 오를 것으로 보인다.

1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전날 시금치 도매가격은 4kg에 5만4840원으로, 집중호우가 시작되기 전인 12일보다 38.6% 급등했다. 같은 기간 적상추는 39.0% 올랐고, 대파 가격도 34.8% 상승했다. 12일 20개에 1만5120원이었던 애호박은 2만7640원으로, 82.8%나 뛰었다. 여의도 면적(290ha)의 114배에 달하는 3만3000ha의 농경지가 잠긴 여파다. 또 비닐하우스와 축사 등 농업시설 52ha가 파손됐고, 가축은 79만7000마리가 폐사했다. 특히 육계는 58만1300마리가 폐사해 이미 지난해보다 높은 수준인 닭고기 가격이 더 오를 판이다.

문제는 장마가 끝나도 물가 불안요인이 상존한다는 데 있다. 본격적인 휴가철과 다가오는 추석으로 국내 소비가 증가할 것이다. 8∼9월에 잦았던 태풍이 한반도를 덮칠 경우 상황은 더 꼬이게 된다. 국제 곡물 가격 동향도 심상치 않다. 러시아가 흑해 곡물수출협정을 연장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수출거점을 공격하고 나서면서 밀을 비롯한 국제 곡물 가격이 꿈틀대고 있다. 여기다 올 하반기 원유(原乳) 가격 인상이 예정돼 있어 우유가 들어간 제품 가격이 일제히 오르는 ‘밀크플레이션’도 우려된다. 다음달부터는 순차적으로 서울 버스와 지하철요금이 각각 300원, 150원 오르는 등 공공요금도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곳곳이 물가 지뢰밭이다.

6%까지 치솟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2.7%로 낮아져 고물가·저성장 굴레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이에 힘입어 정부는 하반기부터는 물가안정보다 경제 반등을 꾀하는 쪽으로 경제정책의 물줄기를 돌리려 했는데 기록적 폭우가 이에 제동을 건 형국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물가와 경제 반등은 분리할 수 없는 사안이다. 밥상물가 급등은 소비심리 위축를 부르고 이는 경기침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집중호우로 가격이 급상승한 양파, 상추, 시금치, 깻잎, 닭고기 등을 20일부터 농축산물 할인지원 품목으로 선정해 물가 부담을 완화할 방침이다. 닭고기는 8월까지 할당관세물량 3만t을 도입해 가격안정에 나서기로 했다. 이런 발 빠른 대책은 물론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기후위기 일상화 시대에 맞는 농축산물 공급 안정화대책과 같은 큰그림을 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