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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먹으면 암에 걸려 죽는다."
한여름 무더위를 날릴법한 소름돋는 괴담 속 주인공은 '제로설탕'으로 알려진 설탕대체 감미료다. 당뇨병과 비만 유발 등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설탕을 대신한 설탕대체 인공 감미료는 최근 식품업계 최고의 '신의 선물'로 각광 받아왔다. 건강과 맛을 둘 다 챙길 수 있다는 이점을 내세워 술·아이스크림·탄산음료 등 단맛을 내는 식품에는 전방위 확대됐다.
그러나 상황은 급반전됐다. 오는 14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설탕대체 인공 감미료인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물질로 분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차라리 '설탕'이 몸에 좋다며, 설탕으로의 회귀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나친 공포감이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악영향이 유의미하게 인체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극대량을 섭취해야 가능한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설탕대체 감미료 공포감이 커지자 '제로설탕'을 내세운 식·음료는 순식간에 찬밥신세가 됐다. 아미노산계 조미료인 MSG(글루탐산타트륨)는 몸에 나쁘다는 편견을 심어준 50여년 전 'MSG 괴담'을 방불케 한다. 발암 가능 물질로 여겨지는 '아스파탐'은 대체 어느 정도 인체에 해로운 걸까.
뜨거운 보리차가 '아스파탐'보다 발암 가능성 더 높아
아스파탐의 위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물질 분류 기준을 알아야 한다.
IARC는 발암물질을 ▷1군 ▷2A군 ▷2B군 ▷3군 ▷4군 등 5단계로 나눠 분류하고 있다.
이번에 이슈가 된 설탕대체 감미료 '아스파탐'은 2B군으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된다. 2B군은 '발암 가능 물질'을 말한다. 놀랍게도 우리가 매일 먹는 김치와 같은 절인 채소가 여기에 속한다. 고사리 또한 2B군에 속해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한국인의 아스파탐 섭취량은 일일섭취허용량(ADI)의 0.12% 정도다. 체중이 35kg인 어린이가 ADI를 초과하려면 다이어트 콜라 1캔을 하루에 55캔 이상 매일 마셔야 한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1군은 '확정적 발암물질'로 암을 일으키는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다. 술, 담배, 햄과 같은 가공육 등이 포함돼 있다. 2A군은 2B군보다 위험성이 높은 '발암 추정물질'이다. 튀김, 소고기·돼지고기와 같은 붉은고기가 여기에 속한다. 또 섭씨 65도 이상의 모든 음료가 2A군 발암 물질에 속한다.
3군은 발암성 여부를 판단할 증거가 없는 경우이며, 4군은 발암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신의 선물’에서 ‘악마의 물질’ 전락한 '제로슈가'…식품업계 손절
제로슈가를 신의 선물로 여기며 제품개발과 마케팅에 앞장섰던 식품업계는 '아스파탐'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편의점 CU는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더본코리아와 아스파탐이 없는 '백걸리'를 출시했다. BGF리테일 측은 "안전한 상품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탁주의 장수막걸리는 지난 3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외부 전문 기관 등의 하위 기준이 명확해지면 (아스파탐의) 전면 교체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장수막걸리는 국내 막걸리 시장 40%를 장악한 업계 1위 브랜드다.
프레시코의 콤부차 역시 '제로 말고 제대로'라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탈(脫) 제로슈가'를 마케팅에 활용했다. 프레시코는 "천연 재료로 만들어 건강하다는 것을 어필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마케팅은 적중해 최근 프레시코의 콤부차 수요는 급격히 증가했다.
식품업계는 소비심리 변화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아스파탐 이슈 이후 매출에 분명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며 "이런 소비심리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기업 생존에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최소한의 위험성이라 할지라도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이를 피하는 것 또한 생산자의 책임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아스파탐의 위험성이 극히 낮다 하더라도 굳이 소비자에게 전가할 필요는 없다"며 "더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식품업계가 지향해야 할 점"이라고 말했다.
"아스파탐 안 넣은 건강음료 드세요"…MSG 괴담과 꼭 닮았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런 식품업계의 마케팅이 제로슈가에 대한 공포감을 과도하게 가중시킨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55년 전 MSG 괴담이 조성됐을 때와 비슷한 양상이라는 지적이다.
MSG가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 계기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MSG가 들어간 산동요리를 먹고 메스꺼움, 근육경련 등의 부작용을 겪었다는 기고문이 실리면서 '중국음식점 증후군'으로 퍼졌다.
실상은 근거가 미약한 제대로 된 연구 결과라 보기 힘든 기고문이었다. 이미 여러 통조림과 패스트푸드 등에 MSG가 사용됐으나 부작용 보고 사례는 없었다.
이후에도 MSG 공포를 가중시키는 공신력이 부족한 연구가 이어졌다. 실험용 생쥐에게 MSG를 주사해 장기부전에 걸렸다거나, 생쥐의 안구에 MSG를 주사하고는 실명이 됐다는 식이었다.
여기에 미국 식품의약청(FDA)가 MSG의 일일섭취허용량을 제정하고 기저질환자에게 섭취 제한을 권고하면서 'MSG=독성물질'이라는 공식이 완성됐다. FDA가 뒤늦게 오류를 인정하고 규제를 폐지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20년 뒤인 1988년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음식점 증후군'이라는 말로 괴담이 퍼졌다. 1993년 럭키(현 LG생활건강)가 자사의 조미료를 광고하기 위해 MSG를 화학 합성 조미료라 소개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MSG는 사탕수수에서 얻은 원당 또는 당밀을 미생물로 발효시켜 주요 성분인 글루탐산을 얻어 내고 여기에 물에 잘 용해되도록 나트륨을 첨가한 '발효조미료'다. 식약처는 2018년부터 법적으로 MSG를 화학조미료로 명명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럼에도 라면 업체들은 라면에서 MSG를 빼고 '건강한 라면'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마케팅에 나섰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MSG는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은 더욱 공고해졌다. 최근 식품업계에서 시작된 '탈 제로슈가' 마케팅과 꼭 닮은 꼴이다.
최근에서야 MSG는 사실 건강에 나쁘지 않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방송에서 MSG를 쓰면 안 되는, 숨겨야 하는 식재료로 보여주고 있다. 요식업계 큰 손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역시 과거 인터뷰에서 "더는 MSG 사용을 숨길 필요 없다"며 이런 행태를 비판한 바 있다.
"제로슈가 누군가에겐 삶의 희망…과도한 공포감 조성 말아야"
홀대받는 '제로슈가'이지만 꼭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당 섭취가 극도로 제한되는 당뇨 환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제로슈가는 삶의 행복을 주는 희망이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공포감 조성으로 제로슈가가 주는 긍정적인 영향마저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나온 연구결과만 보더라도 제로슈가의 악영향은 사실상 미미한 수준"이라며 "그럼에도 미디어 등을 통해 제로슈가의 공포감은 극도로 커져만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뇨 환자와 같이 설탕을 섭취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제로슈가는 삶의 행복을 주는 천국과 같은 것"이라며 "지나친 공포감 유발로 이런 긍정적 측면까지 폄훼되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업이 설탕대체 감미료 전체에 대해 등을 돌린 것에 대해서도 "수십 종의 설탕대체 감미료가 있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 감미료를 취사 선택하는 등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설탕대체 감미료 자체가 나쁜 것처럼 호도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홍혜걸 의학박사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스파탐의 발암 가능성은 김치와 같은 등급"이라며 "의도를 갖고 위험성을 부풀리는 이들에게 이용당하지 말자"고 일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