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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초밥집 '스시코우지'에서 만난 일본인 셰프 나카무라 코우지가 생선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한국의 '중저가' 스시는 이제 일본을 뛰어 넘는 맛을 내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스시(초밥)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지금, 한국의 스시맛은 더욱 더 좋아질 것입니다."

흉내내기가 아닌, '제대로 된 스시'가 한국에 대중화된 지 10여년. 한국인들은 일본 본토의 스시맛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라는 비웃음을 날려버리고, 저렴한 가격에 높은 한국식 스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는 도쿄 미슐랭 3스타 출신의 일본인 셰프가 한국에서 수많은 스시를 먹어보고 내린 평가이기도 하다. 유튜브 채널 '코우지TV'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그의 이름은 나카무라 코우지(中村浩治·45), 스시코우지의 헤드셰프다.

지난 7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초밥집 스시코우지에서 그를 직접 만나, 한국 스시업계의 변화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견해를 들었다.

미식에 눈을 뜬 한국인들…맛의 퀄리티를 올렸다

미슐랭 3스타 출신 일본인 셰프 나카무라 코우지. 임세준 기자

나카무라 셰프는 일본 도쿄 출신으로 기계공학과를 전공했지만, 대학시절 스시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을 계기로 요리사의 꿈을 갖게 됐다. 이후 8년 동안 스시집에서 일을 하며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웠다. 세계적인 인맥을 만들기 위해 호주로 유학을 갔다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미슐랭 3스타 식당 '칸다'에서 요리를 배웠다. 한국에는 2011년 건너와 '스시코우지'를 중심으로 여러 스시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구독자 40만명을 보유한 유튜브 '코우지TV'로도 유명하다. 이를 통해 일일일식 등 미식(美食)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미식은 식문화를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며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던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미식에 대해서는 근래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늦은 만큼 미식을 향한 발걸음은 그 어디보다 빠르다.

나카무라 셰프는 "한국인들이 최근 몇년 새 미식에 빠져들고 있다"며 "이에따라 한국에 있는 식당들의 맛의 퀄리티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카무라 셰프는 "특히 20대 젊은 층에게 그런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며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평소에는 돈을 쓰지 않고 모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맛있는 음식을 위해 그에 맞는 돈을 아끼지 않는 소비가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하는 선순환을 형성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가장 경제력이 강한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미식 소비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중장년층이 미식 소비에 나선다면, 한국의 요식업계 질적 향상은 더욱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카무라 셰프는 "돈을 가지고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이 오히려 기존의 소비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훨씬 비싼 술을 마셔볼 수 있음에도 여전히 값싼 소주를 마신다던지,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식을 탐구하려는 이들이 적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간이 흘러 지금 20대가 경제력을 갖춘 중장년층이 될 때는 한국의 요식업계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시는 밥보다 회가 커야 맛있다? NO!…스시에 대한 오해와 편견

실제 일본에서 판매되는 스시 이미지. [야마토 스시]

"맨손으로 쌀 위에 올려진 날 생선 먹는게 무슨 대단한 요리 철학입니까."

한 유명 유튜버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스시를 평가했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정말 스시는 별 볼 일 없는 요리일까.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이 유튜버의 말처럼 스시를 단순히 밥 위에 생선회를 올린 음식쯤으로 낮잡아 평가하는 이들이 많았다.

제대로 된 스시를 만드는 가게를 찾기 쉽지 않아, 맛있는 스시를 먹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횟집에서 판매되는 스시 대부분이 질긴 활어회와 간이 제대로 되지 않은 밥, 전분으로 만들어진 싸구려 와사비를 재료로 썼다. 스시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않은 이들이 스시를 만드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나카무라 코우지 셰프. 임세준 기자

나카무라 셰프는 "2011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몇몇 호텔과 유명 식당에서는 제대로 된 스시를 만들고 있었지만, 그 외에는 한국은 스시 시장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 정말 맛있는 스시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나카무라 셰프는 스시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해소하고자 한다. 대표적인 오해는 스시를 '회맛'으로 먹는다는 것이다. 일부 한국의 스시집들이 밥을 적게 주면서 회를 크게 썰어주는 이유다.

나카무라 셰프는 "스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밥'"이라며 "쌀의 종류, 밥의 질감, 밥알의 수, 쥠의 정도, 온도, 식초와 설탕의 비율 등 여러가지 요소들이 맛있는 밥을 완성한다. 맛있는 밥을 만들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했다.

나카무라 셰프는 "최근 한국에서도 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셰프들이 늘어가고 있다"며 "점점 그런 분위기로 전환되면, 중저가를 넘어 한국의 하이엔드 스시시장도 굉장히 레벨이 올라갈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멋'있어야 '맛'있다…"한식도 하이엔드로 발전시켜야"

화려함이 돋보이는 일본 카이세키 요리. [소림식품주식회사]

'미식'의 미는 맛 미(味)가 아닌, 아름다울 미(美)를 사용한다. 음식의 가치는 '맛'뿐 아니라 음식의 미관과 가게 분위기 등 다양한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결정한다는 의미다.

"맛만 있음 됐지. 겉치레가 뭐가 중요해"라는 말이 이제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미식을 찾는 이들은 이른바 '스뎅밥그릇' 대신 다양한 디자인의 도자기그릇을 선호한다. 맛이 있어도 지저분한 가게는 발길이 가지 않는다. 청결하고 음식과 어울리는 인테리어와 분위기를 갖춘 가게를 찾는다. 음식 플레이팅의 중요성은 갈수록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격식 있는 서비스 제공 예절도 음식의 가치를 더하는 요소다.

안타까운 것은 음식에 멋을 더하는 기조가 '한식'에는 잘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식은 분위기는 상관없이 저렴하고 편하게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식이 유독 하이엔드로 올라서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화려함이 돋보이는 일본 카이세키 요리. [쟈란넷]

나카무라 셰프는 "세계적으로 스시나 가이세키, 와규 등이 고급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배경에는 하이엔드로 보이게끔 하는 '연출'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재료나 맛의 퀄리티를 끌어올리는 것도 필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분위기라는 말이다. 나카무라 셰프는 "예컨대 스시가 미국에 처음 진출 했을 때, 어두운 조명과 깨끗한 조리복, 명품 칼 그리고 조용하고 섬세한 셰프의 모션 등이 그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며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일식이 고급음식으로 인정받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카무라 코우지 셰프. 임세준 기자

나카무라 셰프는 "한식도 글로벌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력 인사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이엔드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이들이 한식을 인정하고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