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챗GPT로 대표되는 전세계 인공지능(AI) 열풍에 관련 반도체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 기업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가 선도하는 AI 칩 시대에 TSMC의 패키징 기술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세계 최초 3나노미터 공정 기술을 선점한 삼성의 ‘반격 카드’가 통할지 주목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반도체 상장사 최초로 시총 1조달러(약 1300조원) 시대를 연 엔비디아는 자사의 그래픽처리장치(GPU)인 ‘H100’과 ‘A100’를 TSMC에 위탁생산 맡기고 있다. 엔비디아 GPU인 H100은 회사가 생산량을 대폭 늘리기로 했는데도, 내년 1분기까지 물량이 다 팔린 것으로 전해진다. 챗GPT 등 AI 산업이 그야말로 활황세를 보이면서, 관련 연산에 사용되는 엔비디아의 GPU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단 설명이다.
업계에선 엔비디아가 TSMC에 위탁생산을 맡기는 이유로, 이 회사의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 기술을 거론한다. CoWoS는 패키징 기술의 하나다.
패키징 기술이란 반도체 칩 제작의 후반부 공정에 해당한다. 반도체 칩에 처음 전자가 이동할 통로를 새기고 조작하는 과정이 전반부 공정이라면, 선로가 새겨진 칩을 보호하고 이를 연결하기 위한 작업이 후반부 공정에 속한다. 그런데 이 후반부에서도 어떻게 칩을 연결하느냐에 따라 반도체의 정보 처리 속도가 높아질 수 있고, 발열 수준도 낮아질 수 있다.
현재 삼성과 TSMC는 3나노 이하 칩 경쟁을 하며 더 작고 효율적인 칩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향후 패키징 기술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3·2·1나노 순으로 칩의 크기를 줄이며 선폭을 작게 하는 데는 물리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첨단 패키징 기술을 선제적으로 연구개발한 TSMC의 기술이 엔비디아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TSMC는 2012년에 CoWoS라는 패키징 기술을 처음 도입했다. 이후 이 기술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이 기술이 TSMC가 엔비디아뿐 아니라 AMD의 중요한 파트너로 부상하도록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역시 TSMC의 패키징 기술에 의해 함께 엔비디아의 GPU에 담긴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5월 엔비디아는 올해 남은 기간동안 TSMC에 CoWoS 방식이 사용된 웨이퍼를 1만장 가량 더 늘려달라고 주문했다. 해당 패키징이 사용된 웨이퍼의 TSMC의 전체 월간 생산량은 8000~9000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엔비디아를 위해서 TSMC가 월 1000~2000장을 추가 생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엔비디아의 추가 주문으로 인해, 경쟁사인 AMD 등이 향후 생산 물량에 차질이 생길까 부담을 느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삼성 역시 이같은 TSMC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반격 카드’를 쏟아내며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첨단 패키지 기술 강화와 사업부 간 시너지 극대화를 목적으로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내 AVP(어드밴스드 패키지)사업팀을 신설했다. 현재 삼성은 ‘I-큐브’(2.5D 기술)과 ‘X-큐브’(3D 기술)라는 자체 브랜드를 사용한 패키징 기술도 개발 중이다.
지난 4월 삼성 파운드리 사업부는 패키징 턴키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서비스는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테스트에 이르는 칩 제작 공정을 ‘원스톱’으로 처리해주는 것이다. 삼성은 하나의 중앙처리장치(CPU)와 여러 층으로 쌓은 D램 등을 함께 배치하는 2.5차원(D) 패키징, 다양한 CPU·D램 등을 수직으로 쌓아 연결하는 3D 패키징 등 첨단 서비스를 고객사에 제공할 계획이다.
삼성은 이달 초 최첨단 패키지 협의체 ‘MDI(멀티 다이 통합) 얼라이언스’의 출범을 알리며 파트너사간 협력 강화를 알리기도 했다. MDI 얼라이언스는 2.5·3D 이종집적 패키지 기술 생태계 구축을 통한 적층 기술 혁신을 이어갈 예정이다. 또 TSMC가 주도권을 확보한 최첨단 패키징(FOWLP) 기술을 삼성 또한 올해 하반기에 도입하며, 추격의 고삐를 바짝 죈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