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일 위버스콘 페스티벌
오전 11시~오후 10시까지
엄정화부터 뉴진스까지 20팀
세대, 국적, 성별 초월한 축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어제 오늘 장르를 초월한 무대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요. 다들 K-팝에 큰 사랑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이곳에 온 여러분들이 K-팝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코)
국경도 세대도 성별도 초월했다. 강원도 인제에서 올라온 열네 살 소녀부터 태국, 중국, 일본, 영국, 미국, 멕시코 등 전 세계 K-팝 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곳이 바로 작은 지구였다.
K-팝 공룡 기획사 하이브가 10~11일 이틀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KSPO)돔과 88잔디마당에서 연 2023 ‘위버스콘 페스티벌(Weverse Con Festival)’은 전 세계를 아우른 지구촌 박람회를 방불케 했다.
이틀간 이어진 위버스콘 페스티벌로 인해 올림픽공원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K-팝 성지’로 불리는 케이스포돔에서 K-팝 그룹들의 콘서트가 무수히 열렸지만, 관객의 밀도는 그 어느 때와도 달랐다. 하이브 산하 레이블의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뉴진스, 르세라핌, 엔하이픈을 비롯해 비투비, 백호, 라잇썸, 김준수 등 K-팝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한 만큼 축제는 음악 화합의 장을 연상케 했다.
위버스콘 페스티벌은 도심형 여름 음악 축제를 표방, 올해 처음으로 야외와 실내를 아우르는 공연으로 진행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진 야외 공연,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진 케이스포돔에서 열렸다. 88잔디마당의 야외 공연에선 다양한 식음료 부스와 타투 체험 부스, 팬아트 전시, 페스티벌 굿즈 판매 부스도 마련됐다. 이날 페스티벌에서만 미리 체험할 수 있도록 한 ‘DIY 굿즈’ 부스도 팬들과 만났다. 음악은 물론 라이프스타일의 모든 것을 경험하는 축제인 셈이다.
페스티벌은 오전 11시부터 시작이었지만, 관객들은 일찌감치 현장을 찾았다. 11일 위버스콘 페스티벌에서 만난 이현지(16) 양은 “2년 전부터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의 팬이 돼 어제, 오늘 공연에 모두 오게 됐다”며 “오늘 야외공연에서 TXT는 가장 마지막 무대였지만, 앞자리를 맡기 위해 오전 9시에 와서 입장 줄을 섰다”고 말했다. 강원도 인제에서 올라온 박예민(14) 양은 “드라마 ‘후아유’를 보고 비투비 육성재의 팬이 돼 처음으로 위버스콘에 오게 됐다”며 “비투비는 저녁 공연이지만 다른 가수들 공연도 보려고 일찍 와서 기다렸다”고 했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야외 무대는 여느 음악 페스티벌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이 많았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K-팝 팬들은 뜨거운 날씨는 아랑곳 않고 스탠딩으로 공연을 즐겼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그 자리에서 틱톡으로 숏폼 콘텐츠를 올리기도 했다. 아티스트의 퍼포먼스 디렉터로부터 직접 안무를 배워보는 ‘어반 댄스 스튜디오(URBAN DANCE STUDIO)’는 특히 인기가 많았다. 미국에서 온 케일라(23)는 “미국에서도 K-팝 댄스 클럽에서 친구들과 커버 댄스를 추고 영상을 만들어 올린다”며 “안무가한테 직접 배우는 시간을 통해 디테일한 동작까지 익힐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야외부터 실내까지 아우른 공연은 현재 가장 핫한 K-팝 그룹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무대였다. 케이스포돔에서 진행, 장장 4시간에 달하는 무대는 K-팝 신성부터 레전드까지 만나는 무대였다.
이번 위버스콘에선 특히 데뷔 30주년을 맞은 엄정화를 위한 트리뷰트 무대가 마련됐다. 가수 이현은 “엄정화는 지난 30년간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노래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며 엄정화라는 장르를 만들었다”는 말로 레전드 선배를 향한 헌정 무대를 소개했다.
이현의 또 다른 자아인 미드낫이 꾸민 ‘하늘만 허락한 사랑’ 무대에선 ‘보이스 디자이닝’ 기술을 적용, 미드낫의 목소리와 엄정화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뤘다. 후배 그룹들의 헌정 무대는 저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담아냈다. 청량하고 상큼한 엔팀의 ‘파라다이스’, 밴드 버전으로 편곡한 백호 ‘디스코’, 엔하이픈 ‘컴 투 미’ 등이다. 엄정화는 ‘호피무늬’ 무대를 선보이며, 케이스포돔을 꽉 채운 관객들의 뜨거운 함성과 박수를 받았다.
4세대 K-팝 돌풍의 주역인 뉴진스는 다섯 명의 멤버만으로도 꽉 채운 무대를 만들었다. 데뷔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여섯 곡의 히트곡을 낸 뉴진스를 향한 글로벌 팬들의 사랑을 충분히 확인한 무대였다. 떼창 유발곡 ‘OMG’를 시작으로 ‘디토’, ‘하입 보이’까지 이어지자, 팬들은 자리에 앉아서도 ‘떼춤’을 추는 장관을 보여줬다.
2세대 K-팝 그룹 비투비의 무대는 단연 여유로웠다. 구멍 없는 가창력으로 모든 노래와 춤을 소화한 무대에선 데뷔 12년차 그룹의 저력을 보여줬다. 첫 무대 ‘나의 바람’에서 육성재, 서은광은 “안녕”,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가 하면, 창섭은 “내 마음 전해줘. 저 멀리 멜로디(비투비 팬덤)에게 닿도록”이라며 팬덤을 부르기도 했다. 팬들과의 소통도 능수능란했다. 서은광은 “어제는 위버스 라이브, 오늘도 위버스콘 라이브, 전 여러분 마음 속에 라이브”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너 없인 안된다’부터 ‘그리워하다’까지 이날 부른 다섯 곡은 모두 ‘떼창 유발곡’이었다.
대미를 장식한 주인공은 K-팝의 트렌드 ‘아이콘 지코’였다. 지코는 ‘터치 쿠키’, ‘괴짜’, ‘새삥’ 등 히트곡을 줄줄이 선보였다. 지코는 “우리 더 재밌게 놀 수 있을 것 같다”며 “영상은 초반에만 찍고 휴대폰을 잠깐 내려놓자. 우리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장면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티스트’부터 ‘아무 노래’까지 이어질 때 관객들은 박자를 놓치지 않는 떼창으로 화답했다. 무대가 절정에 향해가자, 지코는 케이스포돔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모두 일으켜 세웠다. “즐길 준비 됐냐? 이즈 댓 트루(Is that true)?”라고 지코가 물으면,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키도키 요”라고 화답했다. ‘오키도키’와 그 뒤를 이어 나온 마지막곡 ‘보이즈 앤드 걸즈’는 이날 위버스콘에서 가장 뜨거운 무대였다.
좋아하는 가수는 저마다 달랐지만, 현장에선 K-팝을 향한 뜨거운 지지와 애정이 넘쳐났다.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클로이(26)는 “TXT를 좋아해서 왔지만 다른 K-팝 가수들을 만날 수 있어 더 특별한 페스티벌이었다”며 “학생들에겐 K-팝 팬이라는 사실을 숨겨왔는데, 다음엔 함께 오고 싶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온 탄차녹(27)은 “엔하이픈을 좋아해 페스티벌의 2일권 티켓을 예매했다”며 “엔하이픈 팬이지만, 제레미 주커를 비롯해 다른 K-팝 그룹의 공연을 볼 수 있어 좋았고 관객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그룹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똑같이 함성을 보내며 즐기는 축제라는 점이 특히 좋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