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패권경쟁을 펼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를 둘러싼 힘 겨루기가 심화되는 상황이 국내 반도체산업엔 리스크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정부·재계가 해결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주요 2개국(G2) 간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불가피한 ‘양자택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발(發) 인공지능(AI) 반도체 훈풍의 진원었던 엔비디아·AMD 등의 주가가 급등에 따른 차익매물 출회 등의 여파로 조정장에 접어들면서 함께 강세를 보였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반도체주(株) 주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크론 둘러싼 美中 갈등…韓 반도체엔 리스크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니컬러스 번스 주중(駐中) 미국대사는 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글로벌 임팩트 포럼’에 화상으로 참석해 “(미국 반도체업체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의 제재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며 잘못된 것”이라며 “분명히 우리는 이에 대해 저항(resist)하고 반발(push back)할 것”이라고 말했다.
번스 대사는 마이크론을 포함해 딜로이트, 베인앤컴퍼니, 캡비전, 민츠그룹 등 영업정지나 압수수색 등의 조치가 있었던 미국 회사 5개의 이름을 열거한 뒤 “우리는 지난 수개월 사이에 5개의 미국 회사들이 (중국 정부의) 타깃이 된 것을 목격했다”며 “다른 국가 기업엔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 미국 기업에는 발생하는 중국 정부의 일부 관행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중국은 지난달 21일 보안 위협을 이유로 자국 중요 정보기술(IT) 인프라 운영자의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금지한 바 있다. 미국은 이를 경제적 강압으로 규정하고 동맹과 함께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번스 대사의 이날 발언도 그동안 미국 측이 취해온 입장과 맥이 닿아 있다.
문제는 미국 의회와 학계를 중심으로 마이크론과 함께 메모리반도체 선두주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의 마이크론 금지를 자사의 중국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데 이용하지 말고 미국을 도와야 한다는 요구가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 2일(현지시간) 마이클 매콜 미 하원 외교위원장과 마이크 갤러거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기업들이 마이크론의 시장 점유율을 대체하도록 허용하면서 동시에 이 기업들에 반도체법 규정 이행과 중국을 겨냥한 특정 수출 통제에서 예외를 주는 것은 중국 정부에 위험한 신호를 보내고 우리의 한국과 긴밀한 동맹을 약화할 것”이라고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를 외면하기 어렵지만 생산기지가 있는 중국과 단절할 수 없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이번 한국 정부의 요청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응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평가도 전문가 사이에선 나온다.
중국은 국내 반도체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며 최대 소비시장이자 우리 기업들의 메모리반도체 생산거점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西安)에 낸드플래시공장을, 쑤저우(蘇州)에 패키징공장을 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시(無錫)에 D램공장을, 충칭(重慶)엔 패키징공장을 가동 중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50%를 중국에서 만든다. 중국 시장을 접게 되면 이 공장들도 장기적으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8만전자(삼성전자 주당 8만원)’·‘12만닉스(SK하이닉스 주당 12만원)’ 달성을 향한 상승세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外人 삼성전자·SK하이닉스 순매도 전환도 리스크
단기적으로는 최근 급등세 후 조정장에 들어서고 있는 주요 미국 반도체 종목의 흐름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생성형 AI 열풍의 최대 수혜주로 올 들어 주가가 161.79% 상승했던 엔비디아는 6일(현지시간) 미 뉴욕증시(NYSE)에서 전거래일 대비 3.04% 하락한 374.75달러에 장을 마쳤다.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보인 것이다.
엔비디아에 이어 세계 2위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사인 AMD의 주가도 이날 5.15% 하락한 117.83달러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급등세에 따른 차익실현물량이 출회하면서 AI 반도체 관련주 주가가 약세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날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TSMC(+0.47%), 브로드컴(+0.33%), 인텔(+1.03%) 등의 주가가 상승했음에도 지수 내 시총 1위 엔비디아를 비롯해 AMD, 퀄컴(-1.01%) 등의 하락세로 인해 전거래일 대비 0.32% 하락한 3,477.18을 기록했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 대표 반도체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 5·7일 2거래일 연속 약세를 보였다. 특히 삼성전자는 7만2000원 선을 찍은 후 하락하는 모습을 반복 중이고, SK하이닉스 역시 ‘11만닉스’ 고지를 넘겼다 내려오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7일 종가 기준 삼성전자는 0.98% 하락한 7만1000원에, SK하이닉스는 0.64% 내린 10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그동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 급등세를 이끌었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수세가 약해진 것도 리스크다. 최근 코스피 상승을 주도한 외국인은 전거래일(5일)에 이어 이날도 주식을 팔아치우며 유가증권시장에서 이틀 연속 매도세를 보였다.
외국인은 반도체주 중에서도 특히 삼성전자를 대량 매도했다. 외국인은 이날 삼성전자 주식 약 9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으며, SK하이닉스도 110억원어치를 팔아치운 것으로 집계됐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중순부터 외국인이 14거래일 연속 순매수세를 보였으나 이날 처음으로 매도로 전환했다.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차익실현에 나선 것으로 읽힌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는 최근 한 달간 8.56%, 20.27%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