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회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 건축사 인터뷰
운동장 불가능했던 대안학교…트랙이 휴식과 놀이공간으로
건축사의 본분은 ‘사회와 개인의 삶을 잘 조직화 하는 것’
내가 행복한 삶을 살려면 우리 도시가 좋아져야
[헤럴드경제=박자연 기자] 공장 부지에서 태어난학교. 수원 공업지대에 위치한 ‘다니엘 학교’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이렇다. 이 학교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한 건물에서 학교 생활을 한다. 주차장 부지를 활용해 운동장이 없는 독특한 구조도 갖췄다. 다니엘학교는 발달 상태가 천차만별인 아이들의 각기 다른 수요를 고려하면서도 ‘학교’라는 본래의 구실을 해야 했다. 섬세하고 복잡한 작업을 마무리한 김승회 대표건축사를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에서 만났다.
▶지역 공동체 교회에서 만든 학교= “2002년 수원 영통의 한 공업단지에 개척교회를 설계하는 것. 그게 처음 맡은 일이었어요. 그러다 10년쯤 지나 교회가 인근 공장을 인수해 교육관으로 활용하기를 원했죠. 그 건물에는 유치원이 들어섰습니다. 이후 5년 정도 지나 교회에서 우리를 다시 찾더군요. 유치원 과정을 마친 교회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필요하다는 이유였죠. 교회에서는 주차장 부지에 학교를 세워달라 했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다니는 대안학교인 ‘다니엘 학교’가 탄생했습니다”
교회가 만든 공간이다보니 학교는 교회 공동체와 연결돼야 했다. 교회와 유치원, 학교 사이에 옥외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외부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학생과 교인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셈이다. 운동장을 별도로 둘 수 없어 체육관 설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충분한 넓이, 다양한 형태를 가진 트랙을 둬 학생들의 휴식공간이자 교육공간, 놀이공간 역할을 하게 했다.
김 건축사는 “‘이우학교’라는 대안학교 설계를 하고 나서, 대안학교에서 어떤 것들을 더 생각해야 하는지 감은 가지고 있었지만 초등학교가 관건이었어요. 초등학교는 나름의 특수성이 있으니까요. 발달단계가 다른 아이들이 한 건물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 공동의 공간을 불편하지 않게 향유할 수 있을지가 미션이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학교에서 일할 교사분들이랑도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최적의 해답을 찾았죠”라고 털어놨다.
김 건축사가 설계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은 학교의 설립 목적이었다. 김 건축사는 “우리나라는 교육 주체가 국가에 쏠린 형태잖아요. 그런데 다니엘학교는 지역사회 기반이에요. 교육을 행하는 주체가 다원화되는 게 보다 다양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에 재밌고 흥미롭게 작업을 할 수 있었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조적으로 조금 도전적인 면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트랙을 뺑뺑 돌면서 좋아하고, 개방감을 신경 쓴 중정에서 빛과 바람을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라고 부연했다.
성공적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나니 다른 교회에서도 의뢰가 들어왔다. 경영위치건축사 사무소의 김 건축사와 임윤지 건축사는 2017년 서울 양천구 열방교회 교육관 설계를 시작해 2021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교회, 일상에서 비일상적인 경험을= 교회 역시 학교만큼이나 설계 과정에서 ‘고심’이 필요한 건축물이다. 김 건축사는 “학교와 교회는 본질적으로 비슷해요. 일종의 커뮤니티죠. 여러 종교들이 학교를 가까이하거나 연계된 이유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는 교회, 성당, 원불교, 천주교순교자박물관 등 다양한 종교 시설 건축을 담당해왔다.
교회와 학교의 차이는 ‘신’을 만나는 공간이다. 그래서 교회는 일상과 아주 가까우면서도, 내부에서는 비일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김 건축사는 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빛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김 건축사는 “성경 등에서 보면 신의 말씀을 빛이라고 하는데, 이 빛을 출력하는 방법은 건축사마다 다릅니다”라며 “저같은 경우는 각 교회의 교리를 반영해서 재단에 집중되는 빛, 골고루 비추는 빛을 조절하죠. 영동교회 같은 건축물은 일부러 뿌옇게 빛이 들어오게 했어요. 추상적인 빛을 사용해 신성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건축은 사회-개인의 삶을 공간에 조직화 하는 것=1995년 건축사사무소를 열고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학교, 교회, 병원, 호텔 등 전방위적으로 건축물을 설계해 온 김 건축사가 생각하는 건축사의 본분은 ‘사회와 개인의 삶을 잘 조직화 하는 것’이다.
김 건축사는 “개인적으로 건축사는 사람들의 삶 또는 개인이나 사회의 삶을 공간으로 조직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교를 예로 들면 ‘이곳을 어떤 학교로 만들거냐’가 설계의 출발이라고 여깁니다. 앞서 설명했던 다니엘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더불어 교육받는 공간이어야 했거든요. 대안학교다보니 다채로운 수업도 많고 이동수업도 원활해야 했죠. 그러다보니 조그마한 여분의 교실들이 많아요”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어떤 교육의 방식이라든가 또는 교육의 목표가 건축 안에 들어갔을 때 이 건축물에 의미가 생긴다고 봅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건축사가 좋은 건축물을 판단하는 기준은 건축물의 본래 목적을 온전히 담아내는 데 있다. 미적 요소는 이후 판단할 문제다. “건축의 본질을 담아낸 건축물이 아름다우면 좋겠죠. 아름다워서 좋은 관상의 대상, 감상의 대상이 되면 좋겠지만 그 자체는 후순위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자신만의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어떤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것이 건축사에게는 행복같지만 그게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기도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건축사는 건축물이 당장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것보다, 건축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비전을 건축이 대응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본질에 가까운 건축물이된다고 정의했다.
▶도시 재생을 꿈꾸다= 수많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김 건축사도 꿈꾸는 작업이 있다. 다름 아닌 ‘아름다운 마을과 도시 만들기’다.
“건축가의 본분이 사회와 개인의 삶을 공간적으로 잘 조직하는 일이라고 했잖아요. 그것의 어떤 궁극은 아름다운 도시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삶이 결국은 모여 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모여 사는 조그마한 마을 도시들이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나 혼자 행복해서는 행복해질 수가 없다’라는 가치관이 전제돼 있어야 하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이 행복해야 되고 우리 가족이 행복해지려면 우리 사회가 행복해져야 되는 생각이 뻗어나가야 되는 거예요. 즉, 내가 행복한 삶을 살려면 우리 도시가 좋아야 한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합니다”라고 털어놨다.
물론 이것은 김 건축사 혼자 하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김 건축사는 “일개 건축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그게 또 가능하면 안되기도 하고요. 다만 투자비와 회수비에만 매몰되지 말고, 개별 건축물을 설계할 때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지, 또 이 건축물을 지어서 동네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는지를 한 번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겁니다. 그럴 수록 좋은 도시, 좋은 마을이 많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김승회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시건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미국의 S.O.M., 한국의 서울건축을 거쳐 (주)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으며 현재 이 사무소에는 김 건축사와 임윤지 건축사가 일하고 있다.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는 지방 소도시 보건소 연작을 통해 공공건축물을 다수 작업했고, 일산주택, 서초동주택, 이우학교,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롯데부여리조트, 라파엘센터 등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서울시건축상, 한국건축가협회상, 건축문화대상, 대한건축학회 무애 건축대상, 김수근문화상(2009) 등 수많은 수상 경력이 있으며, 제1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서울교육청이 '서울교육공간 및 건축' 분야에서 활동할 첫 번째 민간전문가 자문관으로 위촉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