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美 구겐하임 공동기획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개최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한강변의 타살〉, 1968, 1968년 10월 17일 제2한강교(현재의 양화대교) 아래 강변에서 열린 퍼포먼스의 기록,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 황양자, 정강자 유족, 정무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김미경 컬렉션 제공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한강변의 타살〉, 1968, 1968년 10월 17일 제2한강교(현재의 양화대교) 아래 강변에서 열린 퍼포먼스의 기록,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 황양자, 정강자 유족, 정무진,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김미경 컬렉션 제공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1968년 대한민국미술전람(국전)의 심사비리가 터졌다.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작가는 기성세대의 ‘짜고 치는’ 판에 정면으로 반발했다. 장소는 제 2한강교(양화대교). 다리 아래서 이들은 무덤 같은 구덩이를 파고, 색 비닐천을 몸에 감고 목만 내 놓은 채 묻혔다. 관객들은 이들에게 물을 부었다. 타살과도 같은 행위다. 무덤에서 나와 비닐천 위에 흰 페인트로 자신들을 살해한 기성세대를 고발하는 글을 썼다. 그리고 비닐천을 태우고, 무덤에 매장 했다. 장례식을 차용한 이들의 퍼포먼스는 정치·사회적 발언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메시지보다도 강력하게 기성세대를 비판했다. 사진으로 전하는 ‘한강변의 타살’(1968)의 이야기다.

정강자의 ‘키스미’(1968),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 전경 [이한빛 기자]
정강자의 ‘키스미’(1968),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 전경 [이한빛 기자]

불온하고, 기이하며, 반항하는 예술이 미술관을 점령했다. 억압과 규제가 일상이던 시대, 젊은 작가들은 날 것의 언어로 이에 맞섰다. 형식주의에 치중했던 기존의 회화, 조각에서 벗어나 오브제, 입체미술, 해프닝, 이벤트, 영화, 비디오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로 전위적인 실험미술을 선보였다. 1960년부터 70년에 이르기까지 6·25 전쟁 이후 국가재건을 위한 압축적 근대화와 산업화로 인한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서 예술과 사회의 소통을 주장했던 ‘한국의 실험미술’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으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를 5월 26일부터 7월 16일까지 개최한다. 2018년부터 준비한 전시로, 양 기관의 국제적 협력과 공동연구가 실현된 결과물이다. 서울 전시에 이어 9월 1일부터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내년 2월 11일부터는 LA 해머미술관에서 순차적으로 전시가 개막한다.

송번수, 남북통일 원칙 합의 호외(1972 / 2001 재제작),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 전경 [이한빛 기자]
송번수, 남북통일 원칙 합의 호외(1972 / 2001 재제작),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 전경 [이한빛 기자]

전시는 크게 6개 섹터로 나뉘며 시간순에 따라 한국의 실험미술의 발전과 변화를 담아낸다. 정강자의 ‘키스미’(1968)를 시작으로 초기 해프닝 작업인 강국진, 김영자, 김인환, 심선희 등의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1967), 첫 페미니즘 작품인 강국진, 정강자, 정찬승의 ‘투명 풍선과 누드’(1968), 김구림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1969), 국립현대미술관을 천으로 감쌌던 ‘현장에서 흔적으로’(1969) 등으로 이어진다.

이건용, 신체항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 전경 [이한빛 기자]
이건용, 신체항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 전경 [이한빛 기자]

이외에도 이건용, 성능경, 신문섭, 박현기, 이강소 등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만나는 것도 흥미롭지만,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건 당시의 시대상이다. 1974년 성능경 작가는 아침 일찍 전시장에 출근해 당일 조간 신문에서 기사를 잘라내고, 잘라낸 기사는 기사끼리 모으고 구멍이 숭숭 뚤린 신문은 신문대로 모으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렇게 단순한 퍼포먼스인데도 이를 이적행위로 판단하고, 언제 잡혀갈지 몰라 작가는 무서웠다고 회고한다(신문:1974.6.1 이후). 통제가 심했던 당시 해외 미술계와 한국의 젊은 작가가 만날 수 있었던건 비엔날레였다. 1973년 파리비엔날레, 1975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한국의 실험미술에 대한 찬사는 이같은 국내 상황에 비하면 이례적으로도 읽힌다.

실험미술의 중요한 축인 퍼포먼스는 전시 기간동안 총 3번 재현된다. 김구림의 '생성에서 소멸로'(6월 14일), 성능경의 '신문읽기'(6월 21일), 이건용의 '달팽이 걸음'(6월 28일)이 차례로 서울관 로비와 전시실에서 예정돼 있다.

이건용, 손의 논리, 신체드로잉.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 전경 [이한빛 기자]
이건용, 손의 논리, 신체드로잉.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시 전경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