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마약 사범 최다 검거, 10년 넘는 베테랑 마약수사관
이영권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마약1계 1팀장(경감)
편집자주 “한국에서는…도망쳤다고 추적하기를 중단합니까?” 범죄부터 체포까지, 대한민국 경찰들의 끝나지 않는 ‘붙잡을 결심’을 소개합니다.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저한테 잡혀오면 다 마약 끊는다 말해요. 하지만 못하죠. 교도소 출소했다고 주변에서 ‘출소뽕’하라며 주사기 던져줘요. 정말 굶주린 상황에서 거절하기 쉽지 않습니다”
국내 최다 마약범 검거 기록을 세운 ‘베테랑 마약수사관’ 이영권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마약1계 1팀장(경정)이 생각하는 마약은 ‘사람을 괴물로, 악마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10년 넘게 마약만 수사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 같다. 하지만 2023년 현재 마약 범죄가 심각한 상황을 보면 이 당연한 말도 전달이 잘 안 되는 듯 하다. 그가 언론과의 인터뷰나 외부 교육에도 적극적인 이유다.
마약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이 팀장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말했다. 그는 “마약을 하면 뇌도 수축하면서 변해요. 우울증, 조울증 등 정신병도 동반하죠. (마약 위험성을) 많이 알리려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에서 그를 만나 마약 범죄의 심각성과 마약수사관의 삶을 이야기했다.
이 팀장이 마약수사관의 길을 걷게 된 사건이 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일명 ‘마약 공장’ 사건으로 특진을 했다. 낮에는 의약품을 팔고, 밤에는 마약을 만드는 제약회사를 수사했다. 그는 “당시에 감기약의 중추성 진해제 성분 ‘덱스트로메토르판’, ‘러미라’라 불리는 신종 마약으로 떠오르고 있었죠. 충북 진천군에 러미나를 제조하는 곳이 있다 해서 수사를 했고, 성과를 냈다”며 “진급을 했는데, 그래도 치열하게 일하고 싶더라. 때마침 마약 자리가 비었다길래 갔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자리가 생겨서 시작했다”고 이 팀장은 말했지만, 사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경찰 내에서 마약 수사 부서는 기피부서로 꼽힌다. 밤에 움직이는 마약 사범 특성상 야간 근무가 많고, 쉽게 돌발행동을 하는 마약사범을 다루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 내에서도 오래 근무하려는 수사관이 많지 않다. 이 팀장도 국내 최다 마약범 검거 기록, 10년 넘는 베테랑 수사관, 각종 훈장 등 화려한 경력을 쌓기까지 포기한 것들이 있었다. 그는 “일 년에 휴가를 2~3일 밖에 못 간다. 20대 자녀 2명이 있는데, 졸업식에 한번도 간 적이 없다. 늘 열심히 일하는 아빠였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동료들은 전화로 수시로 그를 찾았다.
10년 넘게 마약 수사만 하면서 국내 마약 범죄도 크게 바뀌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과거 마약청정국이라 불리던 한국은 마약 범죄가 사회적 과제가 된 국가가 됐다. 그는 “제가 5년 전부터 ‘40·50대가 국내 마약 사범의 절반을 차지하다면 앞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예상대로였다”라며 “우연한 기회에, 친구들끼리 놀러갔다가 마약 권유를 받거나, ‘퐁당 마약’으로 마약을 시작하게 된 젊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 팀장 가슴 속에는 마약 수사를 하면서 만난 안타까운 젊은 마약 사범 사례가 많다. 그는 “힘겹게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 간 사람이 마약으로 한 순간에 자신이 쌓은 것들을 날린 사례가 있다”며 “다이어트 강박에 식욕억제제 중독이 돼 경찰서에서도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 젊은 여성을 만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마약 사범에 대한 처벌은 단호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팀장은 “마약 밀반입 사범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성이 있다”며 “해외처럼 국내도 밀반입 사범을 교도소 면회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면회를 녹취하는 등 재범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물론 최근 몇 년동안 형량이 강해졌지만 아직도 ‘1,2년만 고생하면 된다’는 인식이 남아있다. 상습범, 밀반입 사범은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답했다.
20대 자녀를 둔 이 팀장은 마약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마약 사건이 터지면 자녀들과 마약이 왜 나쁜지에 대해서 토론을 자주했다. 무조건 마약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주입식 교육인 것 같다”며 “자녀들과 주기적으로 대화하면서 ‘마약을 하면 몸이 상한다’, ‘사회적으로 나쁜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