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4월 2일까지 ‘주키니(zucchini) 호박’을 들고 구입처나 가까운 대형 마트에 가면 1000원을 돌려줄 겁니다. 먹던 것도 반쪽 이상 남았으면 들고 가셔도 돼요. 무슨 일일까요. 26일 국내산 주키니호박 종자 일부가 미승인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Living Modified Organism)’로 확인돼 정부가 반품과 보상 조치를 하도록 했기 때문이에요.
LMO는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재조합한(넣거나 빼거나 바꾼) 살아 있는 생명체를 말해요. LMO를 수입할 때에는 유전자변형생물체법(LMO법)에 따라 국내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해요. 이번에 주키니 호박은 이 수입 절차를 밟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승인 LMO’ 주키니 유통…“4월 2일까지 반품하세요”
정부가 지난해 외국산 주키니호박 종자 수입 검역 절차에서 LMO가 발견했는데요. 그 후 국립종자원은 국내에서 신품종 등록을 위해 출원되는 주키니호박 종자에 대한 LMO 검사를 실시하고 있어요. 주키니호박 종자(121종)와 애호박 종자(126종)에 대해 LMO 검사가 이뤄졌는데 이 중 한 기업의 주키니호박 2종에서 승인되지 않은 LMO가 발견된 거죠.
‘돼지호박’이라 불리는 이 주키니호박은 국내 총 호박 생산량의 4%에 해당되는데 3월 중 예상 출하량은 960t이라고 합니다. 애호박 등 다른 호박에 비해 15% 정도 가격이 저렴한데요. 식당이나 단체급식에서도 이용하는 농작물입니다. 해당 주키니호박 2종은 한 기업이 2015년 수입, 국내 검역 절차를 밟지 않고 지금까지 판매가 됐다고 해요.
정부와 전문가들은 해당 주키니호박이 우선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입장인데요. 정부는 “미국 식품의약국(FDA)·동식물검역국(APHIS), 캐나다 보건부(Health Canada) 등은 해당 LMO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으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일반호박과 같은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어요.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31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미승인 제품이라고 무조건 ‘위해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안전성 평가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유통됐다는 게 문제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안전성이나 위해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니터링을 통해 발견되지 못한 게 미흡한 지점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2015년부터 유통됐는데 ‘사후발견’…“모니터링 미흡”
국내에 유통된 지 8년 만에 정부에서 승인되지 않은 유전자 변형이 확인된 것에 대해 그동안 찌개에서, 백반집 반찬에서, 급식에서 주키니호박을 평소처럼 먹어 온 소비자는 혼란스러운 상황인데요. 안전성은 차치하더라도 미승인 제품이 장기간 유통돼왔다는 사실 자체에 의문을 표하기도 합니다.
1인 가구인 20대 박모 씨는 “특정 채소 자체가 전량 회수되는 경우 자체를 처음 봐 놀랐다”며 “최근에 후쿠시마 수산물·농산물 얘기도 있고 먹거리에 가뜩이나 예민한데 국산 채소만이라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식품 검역이나 품종관리를 더욱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A씨는 “마트에서 봤던 채소라 당황스럽고 잘 모르시는 분도 여전히 많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 “몇 년간 먹어왔는데 사실 정말 문제가 없는 건지 좀 더 홍보나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학부모 “급식까지 유통된 게 충격…다른 먹거리까지 의심”
안전한 먹거리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성장기 아동을 둔 학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부는 27일 전국 시도교육청에 학교 급식으로 국내산 주키니호박을 제공하는 것을 한시적으로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 상황입니다. 교육부는 4월 2일까지는 국내산 주키니호박을 급식에서 제외하고 이미 납품된 경우는 회수하도록 했습니다.
대형 단체급식업체들도 부랴부랴 전량 회수에 나섰습니다. 삼성웰스토리의 경우 정부 발표 다음날인 3월 27일 전량 회수한 뒤 주키니호박 공급을 중단한 상태라고 합니다. 이마트 등 대형 마트도 농산품 매장이나 고객만족센터 곳곳에 상품 회수 안내 고지물을 게시해서 회수가 진행되도록 돕고 있어요.
경기 구리시에서 초등학생 2명을 키우는 4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아이들이 먹는 급식은 가장 엄격하고 검증된 식자재 유통관리가 필요한데 이런 사례가 나온 것 자체가 충격적”이라며 “다른 먹거리도 자꾸 의심하게 된다. 이번 기회를 통해 특히 급식 납품 식자재에 대한 빠른 전수조사가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LMO 음성 주키니 유통 재개 예정…애호박 가격 ‘반짝 급등’
주키니호박이 반품되는 사이, 애호박 인기는 올라간 걸까요? 27일 2만8100원(20개 기준)였던 애호박의 도매가는 문제가 불거진 지 사흘 만인 29일 3만8940원까지 가격이 뛰기도 했습니다. 이틀 만에 가격이 1만원가량(38%) 급등한 셈이죠. 정부는 “(4월) 3일부터는 LMO 음성으로 확인된 농가의 출하가 재개돼 반품할 수가 없게 된다”면서 “반드시 기간 내에 가까운 대형 마트 등을 방문하시길 바란다”고 권고했습니다.
앞으로 주키니호박이 밥상에서 영영 사라지게 될까요. 그건 아닙니다. 위해성이 확인된 바 없고 LMO 음성으로 확인된 주키니호박은 다시 유통될 예정입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미흡한 모니터링으로 소규모 농가가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나옵니다. 농가·마트·시장·소비자가 놀란 ‘주키니호박 리콜 사태’,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동일한 듯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