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123RF]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을 부여하지 않거나 육아휴직 사용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등 위법하고 잘못된 기업문화는 단호히 바로잡겠습니다.”

근로시간 개편안과 관련해 우려가 계속되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5단체 부회장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0.78명임에도 현장에서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현재 법률상 구비된 제도조차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노동약자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게 이 장관의 문제의식입니다.

이정식 "합계출산율 0.78명 OECD 최하위, 육아휴직 자유롭게 못 써"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고용노동부-경제5단체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

이에 고용부는 서둘러 소속 6개 지방청 및 40개 지청, 2개 출장소 등을 통해 출산휴가·육아휴직에 대한 전방위적인 근로감독에 나설 방침입니다. 고용부가 대대적으로 출산휴가·육아휴직 사용 실태조사에 나서는 건 일이 몰릴 땐 지난 6일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하고, 그렇지 않을 때엔 ‘한 달짜리 휴가’도 가도록 하는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발표된 후 “있는 휴가도 못 쓰는 판국에 현실을 모르는 얘기”란 볼멘소리가 쏟아진 탓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전체 육아휴직자는 전년(11만555명) 대비 18.6%(2만532명) 증가한 13만1087명을 기록했습니다. 13만명을 넘어선 건 처음이지만 여전히 ‘육아휴직’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근로자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남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응답은 여전히 45.2%에 달합니다. 특히 비정규직(58.5%), 5인 미만 사업장(67.1%), 월급여 150만원 미만 노동자(57.8%)에게서 이런 응답비율이 높았습니다. ‘노동약자’가 출산·육아지원제도에서도 소외되고 있다는 뜻이죠.

"육아휴직 신청받은 사업주 '묵묵부답' 일관하면 근로자 휴직 개시 못해"

여성가족부와 주한 스웨덴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아빠육아 사진 공모전'에서 버금상을 받은 안상태 씨의 '업사이클 신문지와 아빠의 가위질'. [연합]

눈치가 보여서, 휴직에 따른 불이익이 두려워서 육아휴직을 가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됐지만 적극적으로 육아휴직을 가겠다고 나서지도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현행 ‘남녀고용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19조’에 따르면 근속기간이 6개월 이상인 근로자는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사업주에 최대 1년의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휴직 개시 예정일의 30일 전까지 신청서를 사업주에 제출해야 하고, 사업주는 이를 승인토록 규정하고 있어요. 하지만 현실은 법과 거리가 있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선 법적으로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자동 개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만약 육아휴직 신청을 받은 사장님이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묵묵부답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육아휴직 신청자는 어쩔 도리가 없겠죠.

캐나다·스웨덴는 신청만으로 휴직 개시…사업주 서면답변 의무화해야

이는 우리 법의 ‘맹점’ 탓입니다. 다른 선진국들은 육아휴직 자동 개시 등의 규정을 명확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스웨덴에선 근로자 신청만으로 사용요건이 충족되고, 네덜란드와 뉴질랜드에선 사업주가 육아휴직을 신청한 근로자에 반드시 서면으로 답변토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근로자는 ‘휴직 개시 예정일 30일 전’까지 신청서를 사업주에 제출해야 하는 것과 달리, 사업주는 자신의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해야 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요.

이렇다 보니 법 해석에서도 ‘모순’이 발생합니다. 고용부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유산·사산휴가 또는 육아휴직 청구 사실을 알았음에도 특별한 사정 없이 별도의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묵시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면서도 “해당 휴가 및 휴직이 바로 개시된다고 볼 수 없다”고 해석한 바 있어요. 이 탓에 실제로 육아휴직 사용을 보장하려면 캐나다, 스웨덴처럼 육아휴직 신청만으로 휴직에 들어갈 수 있도록 법을 고치거나 적어도 신청을 받은 사업주가 특정 기한 내 ‘가부’를 서면 답변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장관 말처럼 저출산은 “국가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날 정부의 엄포에 경제계가 화답한 것처럼 앞으로는 우리도 육아휴직을 마음 놓고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육아휴직 신청서를 받은 사업주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수 없게 법부터 고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