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위대한 지도자 덩샤오핑이 1980년대부터 개혁개방정책을 밀어붙이면서 맨 먼저 손을 내민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얻기 위해 중일전쟁 당시 난징학살 등 과거사 문제를 뒷전에 두고 일본에 머리를 숙였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이 분위기에 편승해 앞다퉈 중국에 진출했다. 오늘날 중국이 G2국가로서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그 당시의 일본 덕분이라는 게 정설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에는 ‘자신을 숨기며 힘을 키운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의 친일·친자본주의적 개혁 드라이브에 내부 반발과 저항이 거셌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마침내 지난 2010년 중국은 일본을 따라잡고,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의 자리에 올라섰다. 절치부심 30년 만에 극적으로 이룬 ‘극일(克日)’이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한국은 북한보다도 못한 세계 최빈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글로벌 시대의 G10 국가로 부상했다. 이 빛나는 성과는 반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죽창가’를 외쳐 얻어낸 쟁취물이 아니다. 한일 수교 1965년부터 오늘날까지 60년 남짓의 기나긴 세월 동안 아니꼽더라도 때론 손을 벌리고 때론 머리도 숙여가며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기업인들과 담대한 결단을 내린 박정희와 김대중 등 위대한 정치지도자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덕분에 한국은 다방면에서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 2021년도 기준 1인당 연간 평균 수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한국은 19위, 일본은 22위 등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군사력 분야도 한국 6위, 일본 8위 등이다. 산업 분야에서도 반도체 및 가전 분야, EV(전기차)용 배터리, 정보통신(ICT), 조선, 석유화학, 철강, 군수산업 그리고 K-컬처로 상징되는 문화예술 분야 등에서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미-중 충돌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작금의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판짜기와 줄 세우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서방 G7 선진국의 실질적 리더인 미국 질서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구(舊)사회주의권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 편에 설 것인가’라는 진영 선택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로 떠올랐다. 우리로서는 싫든 좋든 외교적 고립을 면하려면 ‘미국 줄서기’ 이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냉엄한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일본 방문을 앞둔 윤석열 대통령은 며칠간 잠을 못 이뤘다고 지인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결단을 내리기까지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렸다는 뜻일 것이다. 이번에 윤 대통령이 일제 강제징용자 처리 문제에 대해 내린 결단의 이면에는 한일 관계를 공고히 구축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우리가 일본의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일 관계의 정상화로 우리가 얻어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한일 협력관계를 통해 1300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사업에 진출하는 일이다. 둘째, 일본의 기초기술을 도입해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한편 풍부한 일본 자금을 활용하는 일이다. 반일을 뛰어넘어 극일로 가는 ‘윤석열식 도광양회’에서 기대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장준영 헤럴드 고문·전 한국항공대학교 국제협력고문 겸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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