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 시장에 가장 핫한 소식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입니다.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이 망했으니 그럴 법도 한데 더군다나 주 고객이 기술 스타트업이라고 하니, ‘미국은행 + IT기업 = 초대형 이슈’가 됐습니다.
다행히 SVB파산 이후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선 덕에 일단락이 되는 분위기입니다.
이번엔 일단 SVB사태에 대해 간략히, 알기 쉽게 설명을 드리고, 이 모든 문제를 촉발시킨 '만기보유증권'과 '매도가능증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SVB는 지난 8일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면서 보유했던 미 국채와 MBS 등을 내다 팔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때 손실이 18억달러 날 것으로 추정했고 이를 그대로 공시했죠.
그러자 사람들이 계산기를 두드려봤습니다. 18억달러 손실이 난 매도가능증권 말고, 만기까지 보유하겠다고 공시해 둔 채권(만기보유증권)들을 지금 시점에서 만약 팔게 된다면 얼마나 손해가 날까하고요. 그랬더니 152억달러란 계산이 나왔습니다. SVB의 총자본이 163억달러인데, 18억달러는 벌써 손실을 봤고 추가로 152억달러의 손실이 날 수 있다고? 은행 망하겠구나 생각이 들겠죠. 뱅크런이 발생한 이유입니다.
SVB는 10일 단 하루 사이 420억달러 예금이 빠져나갔습니다. 전체 예금의 1/4이 사라진 것이죠.
▶그럼 대체 왜 SVB는 예금 인출 사태에 제대로 대응을 못한 것일까요. 그리고 대체 왜 18억달러나 손해를 보면서 들고 있던 채권을 팔아야 했을까요.
일단 SVB가 그동안 어떻게 덩치를 불려왔는지 보죠. SVB는 이름 자체에서 보듯 기술 스타트업 기업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면서 덩치를 크게 불렸습니다. 마침 코로나19 기간 엄청나게 많은 돈이 풀린데다(유동성 증가) 기술 기업들이 쑥쑥 성장하니 SVB의 자산-부채는 급증했습니다.
은행 입장에서 고객의 예금은 재무상태표(Balance sheet)상 부채입니다. 고객이 맡기면 잘 운용해서 일정 이자를 더해 언젠가 돌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재무적으로 부채(liability)를 '빚'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의무(obligation)라고 인지하면 편합니다)
그렇게 조달한 자금을 기업을 상대로 대출을 해줘 돈을 벌어 들입니다. 기업에게 내준 돈은 자산(asset)입니다.
기술기업들이 한창 잘 나가고 무럭무럭 성장할 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예금은 물밀 듯이 들어오고 그렇게 들어온 돈을 필요로하는 기업들도 많았으니까요. 선순환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슬슬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워낙 유동성이 많이 풀린 탓에 투자처가 부족해지기 시작합니다. 기술기업들 분위기도 2020~2021년 같지 않았죠.
SVB 입장에선 받아둔 돈은 많은데 이를 굴릴 곳이 줄어든 것입니다. 그렇게 남아도는 여유 자금으로 미 국채와 주택담보증권(MBS)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미 국채와 MBS로 돈을 벌어서 고객들의 원리금 상환을 하겠다는 것이죠. 수익률은 단기물보다 장기물이 높으니 만기 10~30년짜리 국채 위주로 사들였습니다.
(SVB가 얼마나 심하게 자산 편중이 심했는지,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엉망이었는지는 15일 송고한 'SVB사태로 드러난 ‘금융 제국’ 미국의 허술함…“교과서도 안 봤나” 美전문가들 쓴소리' 기사를 참조해주세요)
그런데 지난해부터 연방준비제도(연준)이 금리를 마구마구 올렸습니다. 채권 가격은 당연히 마구마구 떨어집니다. SVB 자산에서 자꾸 구멍이 생깁니다. 한 데이터를 보니 SVB의 포트폴리오 가중평균 듀레이션이 6년이라고 합니다. 금리가 1%오르면 자산가치가 6%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최근 1년 새 금리가 4.75% 올랐습니다. 산술적으로 25%가량의 장부상 손실이 발생한 셈이죠.
(듀레이션 개념은 앞선 연재 기사 '[투자뉴스 뒤풀이] 금리 ‘발작’을 이해하는 첫걸음…듀레이션 이해하기'을 참조해주세요)
눈치 빠른 고객들은 일찌감치 알아챕니다. SVB가 위험하구나. 예금을 먼저 빼내기 시작합니다. 올해 들어서만 1~2월 사이 80억달러가 빠져나갔습니다. 빠르게 돈이 나가면서 당장 손에 쥐고 있는 현금이 부족해지자 SVB는 '팔아도 되는 채권', 즉 매도가능증권을 팔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18억달러 손실을 본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무난한 스토리였습니다. 이제 금리 인상과 그에 따른 채권 가격 하락의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재무 상식입니다.
만기보유증권과 매도가능증권에 대해 알아보죠.
기업들은 본업 외에도 필요에 따라 여러 재무활동을 합니다. 어떤 기업을 지배하기 위해 지분을 사들이기도 하고, 현금 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채권을 사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채권이든 주식이든, 증권을 사들이게 되면 보유 목적에 따라 회계상 다르게 취급해야 합니다. 채권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입니다.
만기보유증권(Held to Maturity-HTM)은 말 그대로 만기까지 보유하겠다고 분류한 것입니다. 다만 만기까지 보유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확실해야 합니다. 당장 돈이 없어 망하게 생겼는데 10년 뒤에 100억원 들어오는 채권 있다면 만기보유증권이라 분류할 수 없겠죠.
반면 언제든 사고팔아서 돈을 좀 벌어 보려고 채권을 매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건 매매목적증권(Held to Trading-HFT)으로 분류합니다. 대략 3개월 안에 팔아버릴 것으로 예상할 때 이렇게 분류합니다.
그런데 당장은 사고팔지 않겠지만 또 그렇다고 만기까지 기다리고 있고 싶진 않은 채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회사가 어떤 이유에서 다른 기업 회사채를 샀다고 생각해보죠. 자동차회사는 금융회사처럼 채권을 사고팔아서 대단한 이익을 내는게 목적이 아니죠. 그게 주업종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만기까지 보유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만기보유증권도 아니고 매매목적증권도 아닌 경우 매도가능증권(Available for Sale-AFS)으로 분류합니다.
이렇게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좀더 세세하게 나눌 수 있으며 정확한 명칭도 다릅니다만, 널리 통용되는 용어를 썼습니다.)
▶굳이 이렇게 따로따로 적어 놓았으니, 회계처리도 달라야 합니다.
100원을 주고 산 채권이 금리 인하로 회계년도 말에 평가해봤더니 120원이 됐다고 합시다. (채권 매수에 따라 오는 쿠폰이익은 어떤 분류든 모두 그 회계연도의 순이익으로 잡힙니다. 따라서 여기선 쿠폰이익은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매매목적증권으로 분류했다면 시가평가에 따른 이익 20원을 그대로 순이익(Net Income)에 반영합니다. 만약 이 채권을 그 이듬해 150원에 팔았다면 30원(150-120)만큼은 처분 이익으로 처리해서 역시 매도한 그 회계년도의 순이익으로 잡습니다.
문제는 이번 SVB사태로 계속 언론에 오르내리는 만기보유증권과 매도가능증권입니다. (여기선 이해가 쉽도록, 또 일반적으로 그렇기도 하니깐, 채권을 살 때 액면가(Par)로 샀다고 할게요)
100원 주고 산 채권이 금리 인하로 120원이 됐으니 20원 만큼의 자산이 늘어났습니다. 그럼 달라진 채권 가치(100→120)와 늘어난 자산분(20)을 장부에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요.
만기보유증권은 가격이 변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재무상태표에 둡니다. 맨 처음 채권 매수 비용 그대로 100입니다.
매도가능증권은 다릅니다. 20원만큼 늘어난 부분을 미실현이익(Unrealized Gain)으로 잡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자산(asset)이 20원만큼 늘어났으면 반대편에 있는 부채(liability)나 자본(equity) 중 어느 하나는 같이 늘어나줘야 재무상태표(balance sheet)의 균형(balance)이 맞습니다.
매매목적증권은 이를 손익계산서(Income statement)의 순이익에 반영했으니 그게 재무상태표의 자산 항목 중 유보이익(retained earning)에 꽂히게 돼 균형이 맞습니다. 어차피 매매목적증권은 곧 팔아버릴 예정이니깐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매도가능증권은 팔긴 팔건데 그게 이번 회계년도일지 다음해 혹은 그 다음해가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니 당장 팔지도 않을 채권 가격이 올랐다고 그걸 이익으로 잡아 올해 회계년도에 포함시킬 순 없습니다. 5억원을 주고 산 아파트 시세가 8억원으로 올랐다고 할 때, 당장 다음달에 아파트를 팔 예정이라면 "3억원 벌었다"고 얘기하고 다녀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장 팔 생각이 없다면 시세가 3억 오른 게 좋긴 하지만 3억원을 벌었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이렇게 내 손에 실제로 쥐어지지 않은 이익과 손실, 즉 미실현 이익-미실현 손실을 담아두는 아주 좋은 계정이 있습니다. 자산(Equity) 부분에 있는 '기타포괄손익'(OCI·Other Comprehensive Income) 입니다. 이름부터 딱 직관적이지 않나요? 채권뿐 아니라 외환자산 처리 등에서 발생하는 미실현손익은 여기에 담아둡니다. 그렇게 쌓아두는 계정이 '기타포괄손익누계'(AOCI)입니다.
SVB에 불어닥친 일은 위와 반대입니다. 100원 주고 산 채권이 80원이 된 것이죠. 만기보유증권은 어쨌거나저쨌거나 회계장부상 가치 변화가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건 매도가능증권입니다. 시가평가를 해서 가치 하락분만큼의 미실현손실을 OCI로 처리하다보니 이게 차곡차곡 쌓입니다. 자산(asset)이 줄고 자본(equity)도 그만큼 같이 감소합니다. 부채(liability) 비중이 커집니다.
은행 재무건전성 지표가 악화되는 것입니다. 눈치 빠른 고객들이 돈을 빼내기 시작했고, 신용평가사들도 경고장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해서 위에서 처음 말씀드렸던 뱅크런 사태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 만기보유증권은 만기까지 보유하기로 했으니 문제될 게 없다고 했죠. 시가평가도 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SVB가 그렇게 담아둔 채권은 다른 것도 아닌 미국 국채입니다. 이보다 더 안전한 자산은 없습니다. 만기까지 잘 보관하면 그동안 따박따박 이자수익 받아먹고 원금 회수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만기까지 보유할 것이라고 우겨도 팔아야할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회계상으로도 일시적이지 않은 문제로 인한 가치 하락 시 만기보유증권도 시가평가를 해서 손익계산서상 손실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SVB처럼 당장 유동성이 급한데 만기보유할 여유가 있을까요?
아래는 SVB사태에 대해 아주 잘 정리해주신 KB증권의 박준우 연구원님의 설명입니다.
반면 진짜로 만기까지 보유할 능력과 의지가 충만한 미국 다른 은행들은 억울합니다. 미 대형은행 찰스슈왑은 SVB사태로 덩달아 주가가 급락하자 "만기보유증권의 미실현 손실에 관심을 두는 건 문제가 있다. 우린 만기 전에 그것을 팔아야만 할 이유가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죠.
▶이번엔 SVB 사태와 금융자산(Financial Assets) 회계처리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SVB사태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너무 과하면 독이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미 국채는 최고의 안전자산이지만 그것만 과하게 먹다보니 탈이 난 것입니다. 마치 헬스클럽의 몸짱 아저씨들이 근육 키우기에 좋은 닭가슴살만 지나치게 드시다가 통풍에 걸려 고생하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투자든 인생이든, 분산과 위험관리의 중요성은 다를 것이 없네요.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에서 증권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