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강남 등 ‘국힘 텃밭’ 지역구…“공천만 중요하고 총선은 안 중요하냐”
[헤럴드경제=신현주 기자] 신임 지도부의 잇따른 ‘극우 발언’으로 국민의힘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제주 4.3사건은 김일성의 지시로 일어났다’고 발언한 태영호 최고위원부터 ‘5.18 정신의 헌법수록을 반대한다’는 김재원 최고위원의 발언까지 논란에 휩싸이자 당 지도부는 진화에 나섰다. 당내에서는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이들이 자기정치를 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김기현·대통령실 ‘선 긋기’에 꼬리 내린 김재원
김 최고위원은 앞서 지난 12일 극우 성향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 예배에 참석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 “불가능하고 저도 반대”라고 발언했다. 전 목사가 ‘전라도에 립서비스 하기 위한 것이었냐’고 묻자 김 최고위원은 “표를 얻으려고 하면 조상 묘도 파는 것이 정치인 아니냐”고 밝혔다.
5.18정신의 헌법 수록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을 뿐 아니라, 김기현 대표 역시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안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여당 의원들과 5.18 기념비 앞에서 참배했다.
비판이 거세지자 당 지도부는 선을 그으며 진화에 나섰다. 김 대표는 지난 14일 김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고, 이어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입장을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며 “5.18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했다. 사실상 김 최고위원과 ‘거리두기’에 나선 것이다.
김 최고위원도 같은 날 SNS에 “저의 모든 발언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매우 죄송하다. 앞으로 조심하겠다”며 “아울러 5.18정신의 헌법전문 게재에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공식사과 후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지난 16일 유튜브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전 목사 주재 예배 참석 이유를 묻자 답변을 주저하며 “하여튼 그렇게 됐다”고 말을 아꼈다.
국민의힘은 과거 당내 인사들의 ‘5.18 망언’으로 홍역을 치른 뒤 5.18 명예 회복에 주력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5.18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기까지 했다.
태영호 “제주 4.3사건 배상엔 동의”라지만 사과 요구엔 ‘묵묵부답’
제주 4.3사건 망언 논란이 불거진 태 최고위원도 “유가족에게 상처 줄 의도는 아니었다”고 했지만, 기존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태 최고위원은 지난 13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냐’는 질문에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제가 제주 4.3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무고하게 희생된 피해자 분들을 비하하거나 조롱해서 만들어진 논란거리가 아니고 그분들 앞에서 용서를 빌면서 나온 논란거리”라고 반박했다. 태 최고위원은 “그때 당시 과도하게 국가 폭력을 써서 억울한 사람들이 정말 많이 희생이 됐는데, 그에 대해 우리가 치유하고 보듬고 국가 배상을 해야한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부연했다.
다만 그는 “그 사건이 발발된 동기에 대해서 제가 이야기한 것이지 이후에 그분들에 대해서 국가가 해야 할 의무와 책임, 이것은 전적으로 지금 정부가 하고 있고 이전 정부에서 해왔던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제주 4.3사건을 둘러싼 ‘색깔론’은 그간 그릇된 역사인식의 원인으로 지적받아왔다. 관련 단체들이 태 최고위원의 발언에 “태 최고위원은 낡아빠진 색깔론으로 국민들을 현혹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며, 제주 4.3사건을 폭동으로 폄훼해 온 극우의 논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정부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삼일절 기념대회에서의 경찰 발포 사건과 이어진 경찰의 과도한 검거작전이 도화선이 됐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이 주도한 무장봉기는 남로당 중앙당 지시 없이 남로당 제주도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2003년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부 책임을 인정했으며, 지난 2014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주 4.3 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윤 대통령도 지난해 추념식에 ‘당선인’ 신분으로 참석했다.
그럼에도 태 최고위원은 기존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15일 기자회견에서 유족 등의 사과 요구에 “사과를 하려면 제가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 제가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며 사실상 거부했다.
“내년 공천 위한 전략적 발언이자 전형적인 자기정치” 당내에서도 비판
당내에서는 이들이 “자기정치”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 대표가 차기 공천 경선을 ‘당원 중심’으로 치르겠다고 공언하면서, 강성 보수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부적절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김재원, 태영호 최고위원의 지역구는 각각 경북 상주·의성·청송과 서울 강남갑으로, ‘총선’보다 ‘공천 경선’을 통과하는 것이 더 어려운 지역구로 불린다.
국민의힘 영남권 초선의원은 “김 최고위원의 ‘5.18 망언’은 전략적 발언이자 전형적인 자기정치였다고 본다”며 “향후 공천 경선도 당원 중심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해당 세력을 더 결집하려고 극우발언을 내뱉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 최고위원의 경우 TK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럴 수밖에 없다”며 “공천만 생각하고 내년 총선 결과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태 최고위원이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나무랄 사람은 없지만, 여당 지도부의 발언의 무게를 알아야 하지 않나 싶다”고 평가했다. 그는 “태 최고위원의 주장을 정리하면 ‘정부 조사 결과에는 김일성이 지시했다는 내용이 없지만 내가 알기론 그렇다’는 식 아니냐”며 “(태 최고위원 발언에 대한) 물증도 없고 유족이 직접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는데, ‘제주 4.3 사건 유가족을 위로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기 때문에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우리당에게 마이너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