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500년에도 세금 내고 영수증

美 독립혁명은 茶 세금 폐지가 발단

볼리비아 ‘10센트 세금’에 영토 전쟁

난로세·창문세·수염세·노총각세까지

세금 피하려다 혁신 제품 나오기도

[북적book적]세금 걷는자와 피하는자 ‘5000년 머리싸움’
“사람들이 실제로 세금을 내게 하려고 정부에서 쓰는 주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세금 명령을 위반하면 벌금이나 처벌이 부과될 거라고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좀 더 일반적으로 표현하면 통치자들은 어떻게 하면 법 집행을 돈벌이가 되는 사업으로 바꿀지를 역사에서 배웠다는 것이다.”(‘세금의 흑역사’에서)

1799년 나폴레옹 병사들이 이집트 북부 로제타 시 근교에서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상형문자와 아랍어, 그리스어로 나눠 쓰인 비문은 나머지 두 문자를 알고 있던 학자들에 의해 20년 만에 해독된다. 무엇이 그렇게 세 문자로 새길 만큼 중요했던 걸까? 이 비문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기원전 196년)가 내린 세금관련 칙령으로, 이집트 신전 사제들에게 이전에 누렸던 세금 특권을 부활해주고 다시 세금 감면 혜택을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금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2500년 수메르 점토판엔 세금을 납부한 영수증이 있다. 세금이 수천 년간 권력자의 강력한 통치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현대인에게 세금은 그저 ‘내 거’를 빼앗아가고 골치 아픈 제도로 여겨지지만 조엘 슬렘로드 미시간대 교수는 ‘세금의 흑역사’(세종서적)에서 “세금의 역사는 때로는 신비롭고, 때로는 섬뜩하고, 때로는 흥미진진하다”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북적book적]세금 걷는자와 피하는자 ‘5000년 머리싸움’

책은 세금이 어떻게 창안·부과되고 시민들은 언제 순순히 세금을 내고 언제 저항했는지 역사의 흥미로운 세금 이야기를 통해 세금의 원칙과 부의 흐름을 보여준다.

세금이 유혈사태를 부르고 세계사를 바꿔놓은 사례는 많다. 그 가운데 미국 독립혁명과 관련이 있는 ‘보스턴 차 사건’은 알려진 것과 달리 세금을 올렸기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라 줄여서 일어난 사건이다. 인도 동인도회사에서 아메리카로 수출되는 차에 대한 세금을 완전 폐지, 가격이 하락하면서 궁지에 몰린 아메리카 식민지의 부유한 밀수업자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는 주민들의 지지 속에 폭동에서 혁명으로 이어진다. 당시 차 소비의 4분의3이 밀수였으며, 보스턴 시민들에게는 일상으로 여겨졌기에 밀수를 억제하려는 영국 정부의 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10센트 세금 때문에 일어난 국가간 전쟁도 있다. 사막지대이지만 비료 원료가 풍부하게 매장된 아타카마주를 놓고 볼리비아와 칠레가 벌인 전쟁이다. 볼리비아의 영토로 인정하되 칠레 기업들의 세금을 면제키로 한 조약을 파기하고 볼리비아가 광물 100kg당 10센트의 수출세를 부과하자 칠레가 서전포고를 한다. 볼리비아는 결국 패해 아타카마주를 뺏기고 육지로 둘러싸인 현재에 이르게 된다.

국가활동에 쓸 자금조달을 위해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부과할지를 찾는 건 모든 정부의 과제다.

1697년부터 1851년까지 영국에서 부과된 창문세는 그런 측면에서 영리한 아이디어였다. 직전 폐위된 스튜어트 왕조는 난로 개수를 확인하기 위해 세금 조사관들이 집안까지 들어가 불만을 샀다. 이에 난로세를 대체할 만한, 밖에서도 확인이 가능한 창문에 주목했다. 창문 개수가 많을수록 부유하니 더 많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논리로, 이는 오늘날 주택 크기와 수에 매기는 제산세의 단순버전이다.

그러나 창문수가 바로 부의 정확한 척도는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창문세는 특정 창문 수 이상의 주택에만 적용됐다. 그러자 세금을 줄이려 창문을 막는 꼼수가 유행했는데, 반대론자들은 이 세금을 ‘천국의 빛에 대한 세금’이라고 비난했다. 프랑스는 1798년 영국을 따라 창문세를 도입했는데, 한술 더 떠 문에도 세금을 매겼다.

통치자들은 독점권을 수입원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서유럽 중세에선 농부들이 영주의 방앗간에 수수료를 내고 곡식을 갈고 빵을 굽는 데도 수수료를 따로 내고 영주의 오븐을 사용해야 했다.

통치자들이 계속 늘어나는 재정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백성의 동의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중세 서유럽에서부터 근대적 조세제도의 요소가 생겨나게 된다. 근대적 세금구조는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와 벌인 전쟁 이후 정치 상황이 안정되면서 처음 생겨났다. 토지에 대한 세금할당제, 관세 수입, 다양한 소비세,특히 전문화된 조세 행정이 뒷받침된 세금 구조는 영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성장하는 힘의 핵심으로 작용한다.

강제력을 동원, 갖가지 명목의 세금을 징수하는데 맞서 창의적인 세금 회피 전략도 발달하게 마련이다.

19세기 동안 영국의 배는 길이와 너비에 따라 항구요금과 등대요금을 내야 했는데, 세금을 최소화하기 위해 깊이가 깊고 폭이 좁은 기형적인 배가 탄생했다. 담배에 붙인 세금을 피하느라 종이에 잘게 썬 담배를 싸서 파는 롤 담배가 1990년 독일에서 유행하기도 했고, 길이가 35센티나 되는 파티 시가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상한 모터사이클도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모터사이클에 세금우대 조치를 하자 뒷좌석에 간 벤치를 설치, 8명까지 탈 수 있는 바퀴가 세 개 달린 모터사이클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혁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1994년 알코올세를 회피하고자 산토리는 맥아함량이 65퍼센트로 고율세 바로 아래 등급인 스파킹 알코올 음료 하포수를 출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세금은 단지 세수를 올리는 목적 뿐 아니라 교정 목적도 있다. 1698년 러시아 표트르 대제는 일련의 개혁을 시도했는데 개 중엔 전통 귀족들의 지저분한 턱수염도 있었다. 그는 깔끔한 유럽 귀족과 달리 털투성이에 화가 나 수염세를 물렸다. 차라리 세금을 내겠다는 이들은 수염토큰을 사서 달고 다니게 했다. 출산장려를 위한 노총각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20세기 미국 일부 주에서도 시행됐다.

세금과 뗄 수 없는 문제는 공정성 문제다. 세금을 누구에게 부과하느냐다. 저자는 세금부담은 결국 마땅한 대안이 없는 과세 대상을 소비하거나 생산하는 사람들이 지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책은 세금 규칙 만들기의 복잡한 현실을 비롯, 각 정책이 거둔 눈부신 성공과 실패, 세금제도의 미래까지 방대한 에피소드를 통해 세금 부과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세금의 흑역사/마이클 킨, 조엘 슬렘로드 지음, 홍석윤 옮김/세종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