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이 급속히 전국으로 퍼져간 것은 피지배층 출신 조선인들이 생계 문제에 부딪혀 민족 모순을 인식한 것에 기인한 것이다.’
임종권 한국국제학연구원장이 최근 출간한 ‘역사의 변명’(인문서원)에서 농민들의 3.1운동 참여 배경을 설명한 대목이다. 임 원장은 3.1운동 때 농민들이 만세 시위를 민란처럼 폭력적으로 주도해나간 배경에는 바로 친일 세력화된 기존 사대부 양반 지배층 출신 지주들의 수탈이 었었다고 주장한다.
농민들은 일제의 식민 통치가 자신들에게 조선 왕조 체제보다 더 유리할 것인지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지배층 출신 지식인들의 애국계몽 운동에 동조한 건 바로 식민통치로 인해 겪은 불이익에 대한 분노가 컸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즉 식민 통치로 토지 소유 관계가 변하면서 소작농 전락, 소작료 급등 등으로 삶의 기반이 흔들리면서 급진적 사상에 쉽게 동조하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피지배층의 계층자각과 민족 의식은 지배층, 엘리트층이 일제에 협조하며 친일화돼가는 것과 반대로 더욱 거세지고 확산돼 항일투쟁의 주류를 형성하게 됐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3.1운동 이후 식민통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폭력 저항이 유일한 수단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스스로 주체가 돼 소작조합, 농민조합 등을 조직하고 소작쟁의, 수리조합 반대운동 등 민족해방운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런 시각은 그동안 3.1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설명해온 역사학과 다르다. 저자는 그동안 역사학에서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줄기인 3.1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그 주요 역할을 지배층의 것으로 주로 기록하며 피지배층의 존재를 유령으로 취급해왔다고 지적한다. “피지배층의 참여를 촉발한 원인을 밝히지 않은 것은 역사학을 장악한 지배층이 역사를 왜곡해 기득권을 획득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임 원장은 나아가 해방 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동족상잔의 비극 역시 조선 시대 신분 갈등과 적대감이 이념의 이름으로 폭발한 것으로 본다. 남북 분단 역시 서로 다른 신분 출신의 민족지도자들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이념 대결을 벌인 정치 구도에서 발생한 것이란 시각이다. 즉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 독립운동가는 조선의 지배층 입장에서 보수적 자본주의 체제를, 만주와 연해주를 근거로 한 사회주의 항일투쟁가들은 조선의 피지배층으로서 평등한 공산주의 체제를 선택, 일제강점기 잠재돼 있다가 해방과 함께 터져나왔다고 본다. 그것이 바로 남북분단과 6.25 전쟁이란 주장이다.
책은 지금까지 역사를 사대부 양반, 지배층이 자신들의 관점으로 기록해온 반쪽짜리로 보고, 사대부 정치와 임진왜란· 병자호란, 세도정치를 계급적 시각으로 재조명, 피지배층의 삶에 바탕한 아래로부터의 역사 읽기를 시도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역사의 변명/임종권 지음/인문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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