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윤석열 정부가 10일 공식 출범함에 따라 재계에도 변화 바람이 예상된다. 새정부가 경제성장의 주도권을 민간에 주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한민국호(號)의 경제 조타수 자리를 기업에 내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삼성, SK, 현대차, LG 등 국내 4대 그룹 총수들이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들이 얼마나 과감한 투자로 주력 산업 고도화 및 미래산업 개척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향후 5년간 한국경제 성장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삼성, ‘재계 맏형’으로 투자 분위기 주도=재계 1위인 삼성의 행보가 가장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재계 ‘맏형’으로서 투자와 고용 등에서 통 큰 결단을 내림으로써 정부 교체 후 전체적인 재계 분위기 전환을 주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작년 8월 가석방 이후에도 향후 3년간 240조원을 신규 투자하고, 4만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새정부 출범 후에도 추가 투자 계획을 밝힘으로써 재계 리딩 기업의 위상을 드러낼 가능성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의 사면 논의도 자연스럽게 재개될 수 있다.
오는 20~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새정부 출범 후 첫 방한 때에도 이 부회장이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기간 이 부회장을 포함한 국내 주요 기업인들과 만나는 자리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부회장이 가장 지근거리에서 응접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는 일정도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자리도 이 부회장이 직접 안내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SK, 미래·친환경사업 선도=SK그룹은 반도체, AI(인공지능), 배터리, 바이오 등 윤석열 정부가 미래전략산업으로 지정한 부문에 일찌감치 투자에 나선 상태다. SK는 그룹의 성장동력 키워드를 BBC(Battery·Bio·Chip)로 정하고 2017년부터 전체 글로벌 시장 투자금 48조원의 80% 가량을 배터리, 바이오, 반도체 부문에 쏟아붓고 있다. 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AI가 그룹의 새 성장동력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AI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SK텔레콤의 회장직에 오르기도 했다.
또 SK그룹은 국내 최대 에너지기업(SK이노베이션, SK E&S 등)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필두로 그린 비지니스 전환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새정부의 국정과제인 탄소중립 실현에도 앞장서고 있다. SK는 2030년 전세계 탄소감축 목표량(210억t)의 1% 수준인 2억t을 자체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최 회장은 현재 맡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업무를 통해서도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먼저 새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활동에 앞장설 예정이다. 최 회장은 향후 정부 직속의 ‘2030 부산세계박람회 정부 유치위원회’가 신설되면 국무총리와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임명 전이지만 다음 달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박람회기구(BIE)총회에서 진행되는 2차 경쟁 프레젠테이션에도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 전동화·UAM 속도낼 듯=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친환경차 보급을 확대하는 새정부의 국정과제에 발맞춰 전동화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새정부는 국정과제 세부내용에 ‘모빌리티 혁명’을 포함시켰다. 이로써 친환경·지능형 모비틸리 전환 촉진을 위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친환경차 구매목표를 상향하고,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의무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맞춰 현대차그룹은 향후 친환경차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해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아이오닉 5와 EV6 등 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 위주의 전기차 라인업에 세단과 대형 SUV를 추가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이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추진 중인 UAM(도심항공교통)과 로보틱스 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새정부는 지능형 모빌리티 및 UAM 제조산업 육성, 산업 현장에 제조·안전 로봇 1만대 보급 등도 국정과제로 삼았다. 현대차는 인천공항공사, KT, 대한항공 등과 UAM 생태계 구축을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민·관 합동으로 UAM 시스템을 개발해 2025년 상용화할 계획이다.
▶LG, K-배터리 ‘글로벌톱’ 선도=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미래전략사업으로 꼽힌 배터리 사업과 전장(자동차 전자장비) 사업에 더욱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정부는 배터리 등에 대한 종합 지원을 통해 ‘K-배터리’의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수성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LG그룹의 배터리 계열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월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하는 등 미국 시장에서 배터리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에 따라 2025년 이후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2~3대중 1대는 LG 배터리를 장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전장 사업은 LG가 가장 주력하는 미래 신성장 동력이다. 2018년 8월 오스트리아 차량용 헤드램프 기업 ZKW 인수를 시작으로 전장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