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수요업계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 막아야”
2018년 이후 쿼터 초과 물량에 25% 고율관세
WTO “EU 철강산업 피해 증명 안 돼”…세이프가드 폐지 권고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유럽연합(EU)의 철강 수요 업체들이 지역으로 수입되는 역외 철강 제품을 제한하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폐지해달라고 촉구했다. 자동차와 건설 등 전방 산업의 강세에도 미국과 EU의 보호무역주의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던 국내 철강업계에 숨통이 트일지 주목된다.
9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최근 자동차 등 철강을 원자재로 사용하는 EU 산업계는 “원자재 가격의 기록적인 고공행진과 공급 불안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악화되고 있다”면서 철강 세이프가드의 철폐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20개월간 세이프가드의 영향으로 철강 제품 가격이 지속해서 상승한 만큼 추가적인 세이프가드 연장 대신 이를 종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동성명에 참가한 산업계 단체는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유럽자동차부품협회(CLEPA), 가전제품협회(APPLiA), 건설장비업협회(CECE), 윈드유럽(WindEurope) 등이다.
EU는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018년 7월부터 시행한 세이프가드를 지난해 연장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냉연, 도금, 전기강판 등 11개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해 2015~2017년 평균 수입 물량의 105%를 넘는 수출물량에 25%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쿼터 배정 물량은 연도별로 5%씩 증량됐다.
영국을 포함한 EU 28개국에 수출되는 철강 제품의 수출 규모는 2018년 42억7000만 달러에서 2019년 36억7700만달러, 2020년 28억1900만달러로 급감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세에 따른 수요 증가로 44억5000만달러 규모의 철강제품이 수출됐지만, 쿼터 제한에 따라 수출에 제한을 받는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세이프가드 폐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EU 집행위는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관세가 여전히 존재하고, 이로 인해 제3국의 철강 제품이 EU로 유입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세이프가드 폐지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최근에는 EU와 미국 간 협상을 통해 EU 철강제품에 대한 232조 관세가 면세되면서 EU의 세이프가드도 폐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세이프가드 연장 여부를 조기에 재검토하기로 하고 6월 말까지 각국과 산업계의 입장을 수렴할 예정이다.
세계무역기구(WTO)도 EU의 철강 세이프가드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WTO는 지난달 27일 EU 측에 철강 세이프가드 조치가 세계 무역 규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WTO는 “회원국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특정 제품의 수입이 증가해 국내 산업에 피해가 발생할 때에 한해 세이프가드를 부과할 수 있는데 유럽위원회가 철강 제품에 대해 이러한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EU와 일본이 미국과의 재협상을 통해 철강제품에 대해 고율 관세를 피한 상황에서 우리 철강업계의 피해가 우려됐다”면서 “EU의 세이프가드가 폐지되면 그나마 수출길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