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전 켈트인들 과르다 언덕에 간 이유는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코스의 원래 출발점은 리스본이지만, 보통은 산티아고에서 110㎞ 남쪽에 있는 미뇨강변 스페인 투이의 이웃 마을 포르투갈 발렌사에서 시작한다. ▶기사 하단, 헤럴드경제 리오프닝 특별기획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기사 목록
마치 프랑스 코스의 출발점이 프랑스의 생장이지만, 대부분 순례자들이 스페인 갈리시아주 초입인 ‘성배(聖盃) 마을’ 세브리로 혹은 사리아에서 출발하는 것 처럼.
발렌사는 해양와 가까운 하구 도시임을 말해주듯 마을 어귀엔 실물크기 닻을 전시해 놓았다. 성문에 갈음하는 아치 관문 몇 개를 통과한 뒤 마을에 진입하는데, 성문을 닫으면 함락될 때까지 민간인 인명피해가 없는, 성 안에만 촌락이 밀집된 전형적인 철옹성이다.
성 요새는 사람 두명이 교차할 정도의 두툼한 성벽 옆에 대포를 설치해두었다. 집집마다 동백, 사루비아 꽃, 귤나무, 홍가시나무 등을 심어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스페인으로 가는 길목 경사진 곳에서 버티며 뿌리까지 드러낸 고목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두 나라 국경인 미뇨강엔 양국을 넘나드는 휴양선, 모터보트, 어선들이 다니고 있었고, 그 위로 두 나라를 잇는 미뇨대교가 1879년 이후부터 놓여있다.
국경을 넘자 어떤 게이트키퍼도 없었고, 스페인 영토 시작이라는 안내판과 동네 개 한 마리가 여행자를 반긴다. 같은 민족, 헌법한 한 국가이면서도 임진강 위 자유의 다리를 맘놓고 건너지 못하는 우리와 대조된다.
2000년 된 마을 투이에도 발렌사 처럼, 귤, 동백, 노랑나팔꽃 등이 마을을 장식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투이 대성당을 오르는 골목은 논골담, 동피랑 혹은 친퀘테레 어촌 골목길을 닮았다. 낡은 타일, 오래된 벽, 그 틈새로 자라난 풀들..
로마시대 이전 부터 미뇨강변 바위산 위에 인구가 밀집돼 있던 곳이 투이이다.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은 인구가 줄다가 페르난도2세왕이 1170년 성당 언덕을 보호하기 위한 도시방어벽을 짓도록 명령을 했고, 상인, 예술가, 유대교도 까지 이에 따랐다. 이 도시를 구성하는 3요소는 성당, 언덕촌락, 마을외벽이다.
투이는 13세기 어부출신이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처음 만든 세인트제임스의 뜻을 이어, 대서양변 걷기여행길을 개척한 산텔모(베드로 곤잘레스 텔모)의 고향이다. 투이 산타마리아 대성당에 가면 성(聖)가족 다음으로, 배(船)를 들고 있는 산텔모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바닷길의 리더인 그가 육지의 순례길을 만든 것이다. 어느 민가엔 순례길 표식인 가리비 모양으로 큰 정원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대성당 안에는 굵은 대들보가 줄지어 설치됐는데, 천재지변이 자주 있어 성당을 더욱 굳건히하기 위해 위기 때 마다 추가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의 성모마리아상은 임신한 상태로 모셔져 있고, 십자가와 채플을 들고 있는 흑인 여성 성인상, 도마뱀 두 마리가 순례길 상징인 가리비를 추앙하는 부조도 있어 이채롭다.
성당내에선 앞으로 늘어날 순례객, 신도들을 맞기 위해 성인들의 환조(丸彫)를 닦아내는 스태프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성당 남쪽 강변 쪽문을 나서면 포르투갈 북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발렌사에선 투이가, 투이에선 발렌사가 가장 잘 보인다. 성당 아래 미뇨강변 집들은 고풍스런 느낌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투이 마을 가옥 중에는 중세에 이용되던 앞면 목재 보드 가리개(taboado)를 그대로 보존한 곳도 있었다.
갈리시아지방 남서부지역은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알바리뇨 화이트와인의 본향이다. 투이 테라스 가우다스 와이너리의 이네스 곤잘레스(45) 지배인은 “최근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수많은 변수를 자동 조절하는 ‘푸드레 오토 예스트(Fudre auto Yeast)’ 기법으로 과거보다 고품질의 와인들을 만들고 있으며, 신세계백화점, 인터불고를 통해 한국에도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갈리시아의 발전 구호 ‘퀄리티 갈리시아’에 걸맞게 전통적으로 우월한 아이템이라도 기술혁신을 계속하고 있었다.
태평양, 인도양을 가끔 접하던 한국인들이 대서양을 대놓고 내려다 보는 첫 지점은 투이 남서쪽 35㎞ 대서양변 과르다(산타트레가)이다.
과르다 대서양변 절벽 꼭대기에 서면, 누구든 영화배우가 된다. 발 아래로는 미뇨강 하구, 포르투갈 몰레도 해변으로 몰려드는 거대 파도의 릴레이가 펼쳐진다. 태양은 일과를 접는데, 서풍과 파도는 잦아들 줄 모른다.
철기시대 켈트인들이 살던 돌벽 움집 빌리지 카스트로 셀타는 평지 해변마을 엘라소(Raso)에서 2시간 가량 등산하면 오르는데, 차로는 10여분 걸린다. 돌로 쌓은 동그라미 집벽 수십개가 2000여년 보존돼 놀랍다.
산꼭대기엔 예배당을 짓고 마을의 윗부분에 약간 더 큰 원으로 지은 촌장의 집을 두었다. 둥근 움직 군락은 산 위라서 경사진 곳에 셀타비고 홈 구장 관중석 처럼 착상했다. 일군의 원들 사이사이로 길이나 있고, 네모난 공동관리 시설과 물품보관소도 두어 모두가 평등하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음을 엿볼 수 있다.
카스트로 셀타의 주민들은 왜 2000여년 전 왜 이 험한 곳 까지 왔을까. 하늘로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오르고, 땅끝이라 여겨 찾았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건재한 철기시대 원형 가옥은 정보화시대를 사는 2022년 엘라소 마을을 무심하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계속)
◆산티아고 순례길 헤럴드경제 인터넷판 글 싣는 순서 ▶3월8일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면, 왜 성인군자가 될까 ▶3월15일자 ▷스페인 갈리시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산티아고는 제주 올레의 어머니..상호 우정 구간 조성 ▶3월22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①땅끝끼리 한국-스페인 우정, 순례길의 감동들 ▷산티아고 대서양길②임진강과 다른 미뇨강, 발렌사,투이,과르다 켈트마을 ▷산티아고 순례길, 대서양을 발아래 두고…신의 손길을 느끼다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①매콤 문어,농어회..완전 한국맛 ▷산티아고 순례지 맛집②파니니,해물볶음밥..거북손도 ▷산티아고 순례길 마을식당서 만나는 바지락·대구·감자·우거지…우리집에서 먹던 ‘한국맛’ ▶3월29일자 ▷산티아고 대서양길③돌아오지 못한 콜럼버스..바요나, 비고 ▷산티아고 대서양길④스페인 동백아가씨와 폰테베드라, 레돈델라, 파드론 ▷산티아고 대서양길⑤(피스테라-무시아) 땅끝은 희망..행운·해산물 득템 ▷산티아고 프랑스길①순례길의 교과서, 세브리로 성배 앞 한글기도문 뭉클 ▶4월5일자 ▷산티아고 프랑스길②사모스,사리아,포르토마린,아르수아 ▷산티아고 프랑스길③종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매력들 ▷산티아고 영국길..코루냐,페롤,폰테데움,베탄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