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조카와의 조우가 어색할 때가 있다. 친구 아이를 돌봐주기에 난감할 때도 있다. 만약 이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는 연령대라면 99% 통할 ‘마법의 대화’가 있다. 특별한 기술도 필요 없다. 이 단어가 나오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일단 킥킥거린다. 의성어 한두 번 섞어주면, 사례라도 한 번 읊어주면 서먹한 분위기는 금세 후끈 달아오른다. 이 마법 같은 대화 주제는, 바로 ‘똥’이다.

아이들은 참 똥을 좋아한다. 똥은 태어나 처음으로 노동력을 투입해 만든 결과물이다. 아이들에겐 노동력과 성취감을 체득할, 값진 경험이자 존재다. 마치 밤새 과제를 마쳤을 때의 쾌감, 수능시험장을 나왔을 때의 후련함 등과 비견할 만하다. 이 같은 이유에서일까, 아이들은 똥을 좋아한다. 열광한다.

이는 유년기까지가 유일하다. 사회화가 진행되면서 똥은 가장 심각한 금기어가 된다. 기자이자 작가인 로즈 조지는 저서 ‘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를 통해 “문명화된 현대사회에서 섹스도 사람들 입에 비교적 쉽게 오르내리고 죽음에 대해서도 더는 쉬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변은 다르다”고 분석했다.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다. 식사나 술자리에선 성관계조차 충분히 수용할 주제이겠지만 똥 얘기는 조금만 길어져도 “더럽다”며 손사래부터 친다. 사회화는 ‘똥 싸러 갑니다’를 ‘볼일 보러 갑니다’로 순화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똥은 더러운 존재다. 하지만 누구나 만들어내는 존재다. 내가 만들면서 내 것조차 혐오스러운 존재. 이 딜레마가 똥 문제를 외면하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관심도 없다. 아니, 관심 갖기도 싫다. 이러면 되는 것일까?

도시화 이전 배설물은 버릴 수 없는 귀한 자원이었다. 귀한 거름으로 쓰이니 반드시 모아야 할 존재였고, 심지어 이웃에도 뺏기면 안 될 존재였다. 도시화는 인간과 똥을 분리시켰다. 퇴비로 쓰이지 않는 똥은 각종 질병을 야기했고, 그렇게 우린 똥을 터부시하며 지내왔다.

환경 가치가 부각되면서 똥의 재발견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인류가 배설량을 줄일 수 없다면, 사람들이 똥을 덜 싸게 강요할 수 없다면 똥을 최대한 활용해보자는 노력이다. 천문학적인 하수 처리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내 ‘사이언스 월든’은 인분을 물과 따로 분리하여 미생물이 인분을 분해, 이를 통해 만들어진 가스로 열에너지 등을 만든다. 연구팀에 따르면, 한 사람이 하루 배출하는 인분의 가치는 500원. 해마다 전 국민이 배출하는 인분으로 계산하면 9조원에 이른다.

물론 현실에 적용하기까지는 당연히 갈 길은 멀다. 위생 시스템 근간을 바꿔야 하니 시간도, 비용도 상당하다. 다만 출발은 ‘똥에 대한 인식 변화’다. 똥을 터부시하는 게 아니라 긍정적 시선으로 관심을 두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면 시장이 생기고, 시장이 생기면 변화로 이어진다. 당연히 우리가 반드시 똥에 관심을 둬야 할 의무도 있다. 이 격언(?)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하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운다.’


dlc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