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상황 모른 채 법 만들어

시행령도 애매 아직 ‘적응중’

위법 피해 기계적 절차 준수

‘지침’·법령개정 목소리 비등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회사도 외부 컨설팅까지 받으며 업무 프로세스에 적응 중이지만, 고객들 불편은 여전히 큰 상황입니다.”(A은행 여신담당 임원)

“고객들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설명 받지 못했다고 항의하거나 민원을 넣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B은행 영업점 직원)

3일이면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된 지 100일이다. 소비자 보호는 강화됐지만, 소비자 편익은 감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소법이 금융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데다, 시행령 조차 애매해 금융사들이 위법 회피에만 급급하면서 소비자 편익은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3월 25일 법은 시행됐지만, 은행들은 아직 법무법인 등으로부터 외부 컨설팅을 받아 내부업무 프로세스 등을 개선 중이다.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TF에서 마련 중인 은행권 공통 업무 매뉴얼도 아직이다. 금융위가 금소법 위반 비조치를 약속한 9월25일까지 남은 시간이 빠듯하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 외부 컨설팅이 끝났고 겨우 초안을 마무리한 단계”라고 말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자체 업무 매뉴얼에 대한 불안도 크다. 은행권은 영업현장의 혼선과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에 세부지침을 담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계속 높이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설명의무 이행'과 관련해 상품별 설명의무 사항의 구체적인 분류와 면책기준 등이 포함된 가이드라인이 신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법 준수 범위 내에서 창구업무 시간을 줄이기 위한 면책기준이 신속히 마련돼야 한다”며 “설명의무 대상이 되는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구분해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사들이 위법에 대한 처벌이 두려워 영업현장에 금소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려 하면서 고객들의 불편은 커지고 있다.은행 영업점의 금융상품 판매 시간은 평균 20~30분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 판매에 대한 설명의무가 강화되면서 제공받는 서류나 설명 내용 등이 늘었기 때문이다. 금소법 시행에 따른 당연한 변화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를 반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품설명이 길어고 고객들의 직접 확인해야 할 문서의 양도 많아지니 상품가입을 하지 않고 발길을 돌리는 고객들이 많다”며 “한 고객을 응대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다양한 상품을 소개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일 횟수가 제한된 투자자 성향 평가로 본인이 원하는 상품을 가입하지 못하거나, 해당 상품에 대한 설명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도 많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적합성을 판단한 결과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권유를 중단한 금융상품인데도 소비자가 계속 가입을 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권유를 못하기에 상품 설명도 할 수 없다고 하면 선택권을 제한한다며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구속성 관련 규정은 일방적인 규제 강화로 소비자의 불만을 키운 대표적인 사례다. 이른바 '꺽기' 방지를 위해 고객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전후로 한달간 다른 금융 상품 가입을 일괄 제한한 규정이다. 은행권에서는 해당 규정으로 인해 자발적인 의사로 필요에 의해 금융상품을 가입하려는 고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대출을 받고 향후 대출상환 자금을 조금씩 모으기 위해서 적금을 가입하려는 고객들도 있다”며 “고객들의 다양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구속성 판매라는 틀에 묶어 규제하면서 고객들의 권익이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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